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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ericopes - What What (Unit, 2018)


이탈리아의 색소폰 연주자 Emiliano Vernizzi와 피아니스트 Alessandro Sgobbio의 듀오 프로젝트 페리코프스의 신보. 2007년 결성 이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때로 Pericopes + 1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머 Nick Wight를 참여시켜 트리오 포맷의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듀오와 트리오 포함 여섯 번째 작품으로 페리코프스 특유의 공간 구성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베르니치는 재즈 신에서 여러 활동들을 통해 유러피언, 아방가르드, 누재즈 등에 이르는 폭넓은 표현력을 선보였고, 스고비오는 전통적인 방식에서부터 일렉트로하우스에 이르는 다양한 연주를 바탕으로 재즈의 새로운 해석을 모색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조금은 상이한 음악적 배경을 지니고 있지는 두 뮤지션이지만 재즈라는 공통의 언어를 기반으로 각자 자신들의 표현을 펼치며 조합 가능한 다양한 기회들을 개방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각자 혹은 공동으로 작곡한 원곡들의 테마를 이용해 상호 합의에 근거한 내밀한 구성을 보여주지만 이후 진행 속에서는 임프로바이징의 계기를 확대하며 관계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극적인 과정들을 이어간다. 이러한 일련의 연계 과정 속에서 자유롭게 표출되는 각자의 표현들은 인터액티브한 상호 관계 속에서 확장된 음악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장르적 형식을 넘어서기도 하며 때로는 장르 내의 다양한 표현들을 포괄하는 듯한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도입과 테마 그리고 마지막 반복에서는 하나의 단일한 공간 속에서 철저한 합의에 의존하지만, 전개 과정에서는 자율성과 유연성에 기반을 둔 공간 활용을 통해 진행을 이어가는, 다분히 규범화된 계획된 패턴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유연한 자율적 공간 속에서 임프로바이징이 확장되면서 동시에 인터플레이의 계기들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관계의 진장이 팽팽하다. 트리오를 거치면서 초기 듀오에 비해 일련의 고착화된 자기 규범이 이들의 음악 속에 형성된 것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이 또한 음악적 완성을 위한 과정이라면 충분히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