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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luhm - Canzoni Di Buio E Luce (Subexotic, 2022)

Pluh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이탈리아 전자음악가 Lucio Leonardi의 앨범. 전문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루시오는 10대 시절부터 블랙 메탈, 사이키델릭 록, 팝아트 등에 이르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여러 그룹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데뷔 20년 차 되는 뮤지션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초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적 표현에 대한 열망의 해답을 전자음악에서 찾기 시작했고, 이후 다크 웨이브의 양식을 결합한 일련의 실험들을 선보이게 된다. Pluhm이라는 이름은 비교적 최근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전 전자음악 작업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앰비언트라는 큰 범주에서 다크 웨이브, 시네마틱, 슈게이즈, IDM, 아방가르드 등 기존 자신의 음악적 관심을 통합하는 듯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다양한 특징들이 하나의 단일한 층위에서 혼용된다기보다 곡의 성격이나 진행의 특성에 따라 복합적인 연관을 이루며 요소적으로 조합되는 듯한 활용을 보여준다. 이는 개별 곡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와 뉘앙스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더욱 구체적인 힘을 얻게 되며, 무척 단조로운 듯한 인상을 주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정서적 분위기를 담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Pluhm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앨범과 EP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 번째 정규 릴리즈로 알려진 이번 작업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루시오의 고유함을 간직하고 있다. ‘어둠과 빛의 음악들'이라는 앨범 제목에서 암시하는 정서적 분위기는 ‘어둠'과 ‘빛'이 상징하는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루시오 스스로 “내면의 가상적 필름"이라고 밝힌 것처럼 일련의 내러티브의 구성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시네마틱 한 플로우를 보여주고 있지만 서사적인 느낌이라기보다 다분히 사이코로지컬 한 긴장과 연관된 듯한 인상을 주며, 다크 앰비언트적인 경향적 특성을 띠고 있지만 어둠보다는 볼드 한 무게감이 강하게 전달되고 있어, 여러 면에서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음악적 경험을 제공한다. 정서적 혹은 심리적 대상을 다루며 루시오는 로우-파이의 공간에서 이를 재현하고 있는데, 이는 몽환과는 다른 의미에서 마치 정신적으로 부유하는 듯한 불안정한 형상으로 다루고 있어 미묘한 불안과 긴장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로우-파이 특유의 텍스쳐가 앨범 전체를 강하게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복합적인 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며 여러 겹의 색을 지닌 음악들로 완성된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드론이나 패드와 같은 일렉트로닉을 비롯해 피아노와 현악 등의 어쿠스틱 소스들을 로우-파이의 공간 속에서 압착한 듯한 레이어링을 보여주고 있어 강한 밀도감을 연출하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다양한 주변 장르적 요소들을 배열해 각각의 곡에 고유한 짧은 스토리 텔링을 완성하고 있다. “Buio / Fine”에서 시작해 “Luce / Inizio”로 끝을 맺는, 역순으로 이어진 앨범 전체의 이야기 구조는 회고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개별 곡을 통해 삶의 중요한 순간을 묘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각각의 트랙이 지닌 미묘한 개별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강한 몰입으로 이어지는 인상적인 플로우를 제공한다. 삶의 무게감을 깊이 있게 다루는 듯한 분위기라 더욱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