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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alph Towner - At First Light (ECM, 2023)

 

미국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Ralph Towner의 솔로 앨범.

 

1940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랄프는 Bill Evans의 영향을 받아 재즈 피아니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Karl Scheit로부터 클래식 기타를 사사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으로 돌아와 피아니스트와 기타 연주자로 생활하던 중 Collin Walcott, Glenn Moore, Paul McCandless와 함께 Oregon을 결성했고, 이 그룹의 활동을 기반으로 ECM에서의 첫 녹음 Trios / Solos (1973)을 발표하며 레이블과의 오랜 인연을 이어오게 된다. 랄프는 레이블의 초창기를 비롯해 그 황금기를 이끌었던 여러 뮤지션 중에서도 핵심에 있었으며, ECM 내의 여러 음악가들과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수많은 역작을 탄생시킨 음악가이다.

 

랄프는 창의적인 기타 연주자다. 12현의 재즈 기타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바로크에서 현대 작곡에 이르는 클래식적인 전통을 포함해 피아노의 복합적인 음색과 화성의 구조를 재현하는 듯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으며, 풍부한 음악적 배경 속에서 다양한 양식을 통합하는 놀라움을 지니고 있다. 이는 랄프가 위대한 작곡가임을 동시에 증명하는 것으로, 오레곤을 비롯한 수많은 리드 작에서, 당대의 음악적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스스로를 마치 하나의 장르로 완성하는 듯한 완결성을 지닌 수많은 오리지널을 선보이기도 한다. 랄프 자신이 리더이며, 작곡가이자, 연주자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의 솔로 리코딩으로, Diary (1973)을 시작으로 첫선을 보인 그의 독주는 50년이 흐른 현재에 새 앨범을 선사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 대해 랄프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많은 뮤지션들을 언급하며, 그들의 흔적이 자신의 음악에 남아 있음을 밝히고 있다. 11개의 곡 중 “Make Someone Happy”, “Little Old Lady”, “Danny Boy”와 같은 고전들을 제외하면 랄프의 오리지널이며, 새롭게 선보인 곡 외에도 기존 곡을 다시 연주한 트랙도 포함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오래곤의 대표곡 “Guitarra Piccante”를 솔로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12현 대신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어 보다 보편적인 청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관성은 오버더빙이나 효과는 물론 다른 연주의 레이어링 없이 오직 순수한 악기의 재현을 통해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여러 음악가들의 흔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클래식과 재즈는 물론 그 하위 범주에서 다뤄질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폭넓게 구사하고 있으며, 특유의 민첩함과 유연한 리듬의 변화를 통해 때로는 블루지 하면서도 때로는 펑키한 감각을 담아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클래식의 언어를 재즈의 연주로 담아 재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특정한 장르로 유형화할 수 없는 독창성은 순전히 랄프 자신에게서 기원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그의 연주는 유연하면서도 여유롭고, 무엇보다 창의적이다. 이러한 창의성은 기존 원곡을 대하는 태도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오리지널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단순히 새로운 라인을 더하거나 해석을 달리하는 방식을 넘어서, 솔로라는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접근과 편곡을 통해, 마치 현재 랄프의 음악적 관점을 제시하는 방식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음악적 현재성을 고민한다는 사실을, 랄프는 이번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식의 악기를 통해, 그 표현 역시 연주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재현하고 있으면서도, 이 안에는 위대한 음악가의 지나온 삶의 궤적은 물론, 그가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다면화하면서도 스스로를 통합하는, 그래서 그를 랄프 타우너라고 부르는, 역사의 일부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