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작곡가 Raphaël Reed의 미니 앨범. 라파엘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현대 창작 관련 학위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0년대 초부터 영화 및 영상과 관련한 상당수의 작품을 발표한 음악인이다. 수백 편의 커머셜 필름에도 참여했고 대규모 행사를 위한 오프닝 작업에도 참여하며 해당 분야에서는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불어 라파엘은 전시를 위한 개인 작업은 물론 간헐적으로 음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번 EP 또한 이에 해당한다. 15분 전후의 짧은 길이에 불과한 미니 앨범이지만, 이번 작업에는 라파엘이 지금까지 선보인 다양한 장르의 영화 음악 속에서 사용한 표현을 집약하고 있는 듯한 압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드라마, 호러, 서스펜스 등 여러 장르의 영화와 관련된 스코어를 작업하며, 그에 대응하는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데, 이번 앨범에는 이러한 라파엘의 다면적 언어와 표현을 개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포괄적인 특징은 기존 Crisis (2021)의 OST와도 닮아 있으며, 한편에서는 해당 앨범의 축약본이라는 인상도 갖게 한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당연히 시네마틱 한 흐름이 지배적이며, 개별 음악이 완성하는 고유한 내러티브 또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경향적 특징에서부터, 일렉트로닉을 활용한 감각적 접근은 물론, 오케스트레이션의 복합적 구성의 편성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을 지닌 앨범의 콘셉트이지만, 일관된 정서적 흐름을 그 바탕에 두고 있어, EP 자체 또한 나름의 영화적인 플로우를 완성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사운드 자체는 익숙한 활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세밀한 큐레이팅과 조합은 고급스럽고 정교하다. 분명 익숙하지만 서로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 사운드를 대질시켜 생경한 질감과 분위기를 연출한다거나, 적절한 순간 악기 배열의 변화를 통해 극적 반전과 음악적 내러티브의 완성을 이루는 등 그 활용과 진행 또한 세련되었다. 전체적으로 다분히 영화적인 스코어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스크린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OST와는 달리 음악 그 자체로 기능하고 효과를 발휘하는 힘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마치 ‘반전’을 모티브로 하는 15분 길이의 짧은 단편 영화를 위해 음악으로 시나리오를 미리 완성한 듯한 인상을 주는 앨범이다.
202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