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Ruth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미국 앰비언트 뮤지션 Rich Ruth의 앨범.
내슈빌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이기도 한 리치는 오랜 기간 Kansas Bible Company를 비롯한 여러 밴드의 투어링 멤버와 세션으로 참여했고, 이후 휴식 기간을 거치며 자신의 개인 작업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외로 그가 선택한 대상은 앰비언트와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이었지만, 리치는 여기에 그동안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일부 반영하여 재즈와 스피리추얼 등의 요소를 반영했고, 곡의 완성 또한 주변 연주자들의 참여를 통해 밴드 형식으로 녹음을 하는 등, 장르 내의 여타 뮤지션들과는 다른 차별점을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리치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이 개인의 경험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 Calming Signals (2019)는 총상과 자동차 강도 이후 겪은 불안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Where There's Life (2021)는 팬데믹 이후의 불확실성을 대하며 마음의 평온을 위한 음악적 기고를 담고 있다. 이번 앨범은 연이은 토네이도의 여파로 혼란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타이틀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번 녹음 역시 여러 뮤지션들의 참여를 통해 완성하고 있는데 드럼 Reuben Gingrich, 베이스 Cameron Carrus, 색소폰 Caleb Hickman과 Sam Que 등과 같은 기존 동료는 물론 색소폰 Jared Selner, 플루트 Valerie Adams, 페달스틸 Whit Wright 등을 포함한 여러 연주자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리치는 이번 앨범 역시 앰비언트 혹은 일렉트로닉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이고 있지만, 녹음에 참여한 여러 뮤지션들의 규모나 실제 그 연주에서는 재즈 혹은 사이키델릭에 가까운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와 같은 특징이 이전 작업에서도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녹음에서는 보다 전면에 드러나고 있으며, 일렉트로닉의 특성은 오히려 기악적인 소스처럼 활용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6-70년대 재즈 씬에서의 스피리추얼 혹은 사이키델릭 계열의 음악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데, 리치는 여기에 내슈빌 특유의 지역색과 일렉트로닉의 특징들을 더하며 8-90년대 언더그라운드 씬의 느낌까지 더한 몽환적인 애트모스피어를 완성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앨범은 90년대 이러한 음악적 흐름에 기여했던 그룹 Tortoise의 설립 멤버인 John McEntire가 믹싱을 담당하고 있어 완성도를 더하고 있다.
게스트 뮤지션들의 참여로 완성된 밴드의 접근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앨범에 수록된 7개의 트랙은 다분히 일련의 규범적인 준칙에 의해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개별 공간에서의 자율적인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개방하여 재즈 특유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으면서도, 색소폰이나 플루트 등의 관악기들은 그 톤과 세츄레이션이 6-70년대를 연상하게 하거나 그루지 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등의 상징적인 사운드로 튜닝되어 있어, 나름의 고유한 음악적 이미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리치는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일련의 시퀀싱이나 이펙트를 통해 개입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독특하게 튜닝된 사운드를 활용해 직접적인 연주를 펼치며 연주의 일부를 완성하고 있으며, 미묘한 장르적 복합성을 보다 생동감 있게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밀폐된 공기감을 개별 사운드가 뚫고 나오며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반복적인 일련의 플로우에 전자음악 특유의 감각적인 그루브를 더하여 장르 복합적인 이미지를 완성하는 등, 앨범 곳곳에서 리치의 탁월한 음악적 연출력을 엿볼 수 있다.
개별 사운드가 지닌 독특함을 온전한 양식적 통합을 이룬 인상적인 곡들이 가득하며,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이며 자연스러운 연관을 맺고 있어 강한 몰입을 유도한다. 혼란을 겪으며 써 내려간 음악이지만 평안에 대한 강한 열망을 응축하고 있어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