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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ichard Luke - Voz (1631 Recordings, 2018)


스코틀랜드 출신 뮤지션 리처드 루크의 데뷔 앨범. 작년 말, 정식 음반 발매를 예고하며 1631 Recordings에서 발표한 9분 남짓한 분량의 EP Beachcombing (2017)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번 앨범의 형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EP의 세 트랙 중 타이틀곡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듀엣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두 곡은 피아노 솔로였던 탓에 이번 정식 앨범 또한 일반적인 독주로 채워졌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EP는 이번 앨범을 발매하기 위한 중간 과정의 성격으로, 피아노 솔로라는 미완의 작업이 바이올린 연주와 만나 어떤 음악적 완성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경과를 유추할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정식 앨범에서는 작곡 과정에도 함께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는 바이올린 연주자 Amira Bedrush-McDonald와의 공동 작업을 담고 있는데, 그녀는 현재 Scottish Chamber Orchestra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목소리'(포르투갈어 Voz)를 낼 수 없는 기간 동안 포르투갈에 머물면서 작곡이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이번 앨범의 곡들은 루크 자신의 사적인 경험과 감정이 반영된 미니멀한 피아노 라인에 기반하고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에 대한 묘사는 물론 재앙과 비극(cf. "Wildfire", "Ashes Falling From The Sky")의 치유를 갈망하는 마음도 함께 담고 있다. "Bookmarks"와 "Goodbyes"는 EP에서와 같은 솔로 트랙을 사용하고 있지만, 바이올린의 레이어가 더해진 연주에서는 그 의미가 전달되는 방식이 달라진다. 따듯한 감성의 사각에서 표현한 듯한 피아노와 그 정서의 모호함을 마치 구체적 언어로 묘사한 듯한 바이올린의 조화는 단순하면서도 과장이 없다. 물론 이들의 연주는 듀엣이라는 전통적인 공간 속에서 진행을 이루기도 하지만 여려 겹의 바이올린 레이어를 겹쳐 풍부한 사운드의 텍스쳐를 연출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 다소 규범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다분히 평이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듯한 정서가 주는 동질감이 이 앨범의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2018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