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Rick Wakeman - Piano Portraits (Universal, 2017)


레전드 록 그룹 Strawbs와 Yes의 키보드 연주자 릭 웨이크먼의 피아노 솔로 앨범. 공연 중에 종종 키보드 솔로로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준 적은 있지만 Steinway 한 대에 온전히 자신의 연주를 담아낸 예는 흔치 않다. David Bowie를 추모하기 위한 라디오 연주 이후 암퇴치 자선 모금 목적의 싱글 발표가 계기가 되어 이번 앨범이 기획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웨이크먼이 웬 경음악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귀에 걸고 다녔던 친숙한 음악들이 하나 둘 이어지고, 이 곡들을 처음 접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떠올리게 된다. 내가 내 아들 나이었던 중학생 시절, 간편한 스트리밍으로 원하는 노래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명동과 청계천까지 달려가 허탕치기 일수였고 겨우 구한 빽판 역시 LP 바늘 망가진다고 아버지 눈치보며 들어야 했다. 웨이크먼의 피아노 솔로는 그 시절 힘겹게 들었던 곡 하나 하나에 대한 회상들을 자기 멋대로 내 기억 속에서 들춘다. 웨이크먼은 과거 자신이 직접 연주에 참여했던 Yes ("Wonderous Stories")와 보위("Life on Mars" & "Space Oddity")의 곡을 비롯해 Beatles, Led Zeppelin, 10cc 등의 원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 특히 비틀즈의 "Help!"는 폴과 존의 원곡 대신 Deep Purple의 커버 버전을 염두에 둔 듯한 편곡을 보이고 있다. 또한 "Amazing Grace"나 "Morning Has Broken" 같은 전통민요 뿐만 아니라 포레, 차이코프스키, 드뷔시, 거슈윈 등의 클래식도 다루고 있는데 엄격한 연주보다는 웨이크먼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개입시킨 어레인지에 기초하고 있다. 신경숙의 소설 속 주인공이 버스 앞 좌석 할머니 무릎에 앉은 소녀를 보며 문득 떠올랐다는 그 한 마디 '나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르페지오와 글리산도가 넘쳐나는 젊은 시절의 화려한 연주를 펼치는 웨이크먼에게도,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연주를 듣고 있는 나에게도 결코 두 번 다시 없을 시간들이 이 앨범에 담겨 있다.

 

201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