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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ob Burger - Marching with Feathers (Western Vinyl, 2022)

미국 작곡가 겸 음악 감독 Rob Burger의 앨범. 롭은 영화나 상업 광고와 같은 영상 관련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했고 2010년대 전까지만 해도 해당 장르의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계열의 많은 음악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작업한 인물 중에는 John Zorn과 같은 음악인이 있으며, 실제로 롭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개인 타이틀을 존의 Tzadik 레이블을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he Grid (2019)는 롭이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양식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와 같은 장르적 변화는 이미 2010년 초부터 점진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를 통해 그는 현대 작곡의 다면적인 형상들에 대한 폭넓은 호기심을 드러내게 된다. 이번 네 번째 타이틀에서 롭은 전작에서 선보인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지속하는 한편, 다양한 양식으로 표출된 유형적 특징들을 자신의 음악적 언어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미 전작에서 모던 클래시컬,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클라우트 록, 라운지 등 여러 장르적 특징들을 마치 백화점의 진열장에 나열한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것이 다면적인 복합성으로 드러나기보다는 개별 곡들이 지닌 성격에 따라 그 유형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방식이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이 롭이 지금까지 선보였던 다양한 커머셜 필름 작업의 성과들을 반영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그만큼 여러 유형의 음악들을 선보이면서도 곡 하나하나가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집약적인 표현들로 완성되었다. 이번 앨범에서도 전작의 이러한 모습은 여전히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다만 전작에서 보여준 라이브러리적인 방대함과 달리 몇 가지 선택적 표현에 집중하며 전체적으로 통일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을 엿보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단출한 피아노 솔로 구성의 곡을 포함, 묘사적 특징을 강하게 반영한 이미지너리 한 연주는 물론, 일렉트로닉을 이용해 활력 넘치는 그루브를 표현한 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제한적이라고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대신 이와 같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정서적 균일함을 강조한 긴장의 대비 속에서 연속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앨범 전체를 순서에 따라 듣다 보면 마치 여러 개의 단편으로 이어진 거대한 옴니버스의 서사를 경험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202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