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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ob Grant - Lost At Sea (Decca, 2023)

 

1955년생 미국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Rob Grant의 데뷔 앨범.

 

롭은 연쇄 창업가이자 광고, 가구, 요트 제작, 부동산 중개, 인터넷 도메인 사업 등에 종사했고, 바다에서의 항해와 일상을 즐기는, 아내와 세 자녀를 둔 가장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도 있지만, 그가 싱어-송라이터 Lana Del Rey, Charles Hill-Grant, Caroline Hill-Grant의 아버지라면 우리 주변의 흔한 가장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자녀들, 특히 라나 덕분에 이번 앨범을 발매했다고 하기에는, Decca라는 중량감 있는 레이블은 물론, 편곡 및 엔지니어링을 비롯한 작업 전반에 Luke Howard를 비롯한 다수의 비중 있는 음악가들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앨범의 타이틀은 물론 각 곡의 제목은 마치 롭이 평소 염원하던 꿈과 일상의 실현을 담은 듯하다. 롭은 악기 레슨과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악보를 읽거나 쓸 수 없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면 평소 좋아하는 바다 위를 표류하듯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음표가 흘러나오고, 감정이 사고를 압도하는 곡이 쏟아져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첫 스튜디오 녹음 또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지며,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연주는 명상과 최면을 오가는 꿈과 같았다고 말한다.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은 롭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항해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여기에 자신의 꿈과 일상을 담아 첫 앨범을 완성한 셈이다.

 

바다와 꿈이라는 두 가지 상징적 요소를 품은 롭의 연주는 서정과 서사를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처음 듣는 순간에도 음악 안에 뮤지션의 고유한 색과 온도가 담겨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주에는 온화하면서도 평온한 정서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극적인 과장이나 화려한 표현 없이도, 그 흐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강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직관에 의존한 자연스러운 진행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형식을 지닌 온전한 음악적 구조를 이루며, 각각의 곡마다 고유한 이야기와 정서적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롭의 연주는 균일한 톤과 제한적인 다이내믹에 의존하면서도 섬세함을 바탕에 두고 있어, 마치 절제된 표현 안에서의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는 듯한 매력을 지닌다. 코드 보이싱이나 텐션의 활용을 통해 미묘한 정서적 반영을 담아내기도 하고, 절묘한 벨로시티의 변화로 미세한 감정의 강약을 조율하기도 하지만, 기교적이라는 인상보다는 과잉을 배제한 진솔한 표현이라는 느낌으로 전달된다. 루크는 일렉트로닉이나 오케스트레이션 혹은 스트링 등의 다양한 소스를 통해 음악에 개입하고 있지만, 그의 역할은 피아노의 흐름에 장식적인 화려함을 더하기보다는, 롭이 전하는 이야기와 정서를 조금 더 세밀하게 포착하고, 그 흐름이 담고 있는 배경을 구체화하는가 하면, 때로는 인상적인 도입을 완성하기도 하는 등, 마치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귀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반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역할 덕분에 롭의 이야기에 우리가 더 집중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행간에 담긴 정서적 배경을 쉽게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앨범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감동은 롭과 라나 부녀가 함께 완성한 곡들에 있다. 서로의 꿈을 향한 애정과 응원을, 일상적 표현처럼 담담하게 담아낸 모습은 깊고 강한 여운을 담긴다. 마치 항해와도 같은 잔잔한 흐름 속에, 진솔한 표현으로 담아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와 감정은, 우리의 꿈을 향한 메시지처럼 전해진다.

 

 

202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