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 기타리스트 Roberto Pianca의 앨범. ECM의 Third Reel 트리오에서 로베르토가 보여줬던 신비감 가득한 공간적 표현을 기억한다면 이 앨범은 그 이후의 후속 작업이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듯싶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적인 분위기가 TR 트리오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앨범은 오히려 Sub Rosa (2017)에 가깝고 참여한 멤버 또한 피아노 Glenn Zaleski와 기타 Stefano Senni 등이 이번 앨범에서도 함께 하고 있다. 그 외 색소폰 Rafael Schilt와 드럼 Paul Amereller가 포함되어 있어 전작과 동일한 퀸텟 포맷으로 녹음이 진행된다. 소소한 구성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작곡의 복합성에 임프로바이징을 위한 공간적 자율성을 개방하면서도 일관된 상호작용을 지속한다는 측면에서 전작의 기본적인 스텐스는 이번 앨범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밴드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적 정합성에 대한 강조에 있다. 오늘날의 재즈가 이미 다양한 장르적 요소의 개입에 의해 그 내용이 확장된 측면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은 이를 다시 전통에 기반한 규범적 준칙 속에서 재구성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전해준다. 다분히 이중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접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앨범은 이와 같은 작업을 밴드가 얼마나 훌륭하게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AABA 등의 전통적 형식은 물론 모달 어프로치 등의 고전적 표현을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공간적 구성 속에서 기존과는 다른 색다른 느낌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인터랙티브 한 유기성을 강조하면서도 리듬과 멜로디의 대칭적 콘트라스트를 지속하는가 하면 반복적인 코드와 선형적인 라인 사이의 끊임없는 대비를 통해 묘한 긴장과 하모니를 연출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일본의 미의식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노노와레'(もののあわれ)를 알파벳 표기로 앨범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어 앨범의 분위기가 조금은 무상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