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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uptured World - Shore Rituals (Cryo Chamber, 2021)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스코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Ruptured World의 앨범. 그의 본명은 Alistair Rennie로 판타지 공포 소설 작가로도 유명하다. 소설 작가와 음악가라는 다른 영역이긴 하지만 장르적 특성에서는 유사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서로 긴밀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Cryo Chamber 레이블에서 발매하는 음악이 다크 앰비언트라는 경향적 특성을 포괄하지만, 그 안에서도 세밀하게 구분되는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하나의 가상적인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를 스토리 텔링 구성에 따라 음악적인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작업 방식을 택하는 음악가들이 몇 명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알리스테어이고, 스토리와 음악의 연관성에서도 가장 완성된 성과를 이룬 예로 손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알리스테어가 세 장의 앨범들은 모두 이와 같은 스토리 진행을 지닌 음악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번 작업 또한 그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해안 거주 부족과 재앙, 풍요 등을 관장하는 여러 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번 앨범은 문명과 신화라는 상충적인 두 개의 문학적 은유를 이용해 스토리를 완성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음악 그 자체는 물론 이를 위해 사용된 사운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야기의 배경을 이루는 파도, 라디오 교신, 일상 대화 등의 다양한 묘사적 장치는 물론 공간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한 사운드 스케이프 등에서 우리는 쉽게 그 모든 시각적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질감의 사운드를 이용해 인간과 신계 두 영역의 대비를 이루는가 하면 효과음이나 다양한 음향 장치를 활용해 그 관계의 묘사를 이어가기도 한다. 효과와 사운드의 연관뿐만 아니라 멜로디를 통해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은 알리스테어의 음악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데, 특히 팰트 하면서도 이미지너리 한 분위기의 피아노는 극적 서정을 더하는 동시에 영화의 섬세한 미장센을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와 음악 모두에서 장르적 특징이 두드러진, 가장 장르적인 앨범이다.

 

20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