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an Davis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독일 DJ 겸 프로듀서 Sebastian Waack의 앨범.
1983년에 태어난 리안은 어린 시절 클래식 기타 교육을 받았고, 20세 이후 본격적으로 디제잉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명 전자 음악 레이블을 통해 작업을 발표하며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갔으며, 인상적인 멜로디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다운 템포 계열의 음악으로 여러 나라에서 폭넓은 팬을 확보하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댄스 플로어를 위한 연주로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감상용으로도 나름의 미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2000년대 후반에는 네오 트랜스 계열의 흐름을 선도하는 뮤지션으로 손꼽히며, 확고한 자신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후 리안의 음악은 주변의 다양한 장르들과의 연관을 보여주며 조심스러운 확장의 징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리안 자신의 새로운 음악적 전환을 알리는 작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자신의 장르적 포용을 일부 구체화하고 있는 한편, 오랜 기간 계획했던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한 녹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에 대해 리안은 풀타임 리코딩으로 완성한 “첫 번째 시네마틱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평소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James Horner, Thomas Newman, Jóhann Jóhannsson에 대한 “음악적 은유”라고 밝히고 있다. 일렉트로닉의 로우 템포에 기반하는 안정적인 진행에 클래식적인 텍스쳐와 필드 리코딩을 활용해 이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복합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을 전면에 배치해 플로우를 이어가는 리안 특유의 미적 취향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녹음에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자연에서 채집한 필드 리코딩을 활용하여, 나름의 휴식적인 분위기와 함께 자연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음악적 염원을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녹음에서는 피아노와 현악 등과 같은 고전적인 연주 악기의 비중이 두드러지는데, Spitfire Audio의 VST를 활용하여 기존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레이어를 추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워낙 정교하면서도 폭넓은 가용성을 지닌 어쿠스틱 샘플이라 이질감은 크게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리안은 고전적인 사운드를 기능적인 역할과 나름의 상징성을 동시에 포착하여, 기존의 일렉트로닉과 유효한 연관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쿠스틱 계열의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이의 위상과 배열의 조합에 변화를 이끌어가며 진행을 유도하는가 하면, 둘 사이의 긴장과 조화의 다양한 연관을 활용하지만, 상이한 텍스쳐들의 대비 그 자체보다는 안정적 균형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규범 대신 둘 사이의 유연한 연관성을 개방함으로써 폭넓은 접점을 보여준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비교적 균일한 정서적 질감을 완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필드 리코딩까지 활용한 나름의 복합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정서를 밀도 있고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듣는 이에게는 쉽게 접근 가능한 음악을 완성하고 있다는 점이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리안이 사용하고 있는 샘플 자체가 익숙할 뿐만 아니라 그 활용에서도 큰 의외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데다,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플로우가 유도하는 자연스러운 몰입은, 그가 의도했던 휴식적인 분위기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 동시에 리안은 개별 곡에 고유한 내러티브적 흐름을 구성하여 극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했던 “시네마틱 일렉트로닉 음악”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곡의 성격에 따라 메인으로 부각하는 피아노나 현악기는 물론 에어 기타나 보이스와 같은 대표 사운드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각 트랙의 고유한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앨범 전체의 흐름에서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균일한 톤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앨범의 타이틀과 관련하여 리안은 “깨지기 쉬운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거울과 마주한 자신과 그 속에 비친 이면의 관계를, 기존 자신의 음악과 새로운 접근 사이의 연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이번 성과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인상적인 완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확장이나 재해석의 가능성도 충분히 포함하고 있어, 이후의 작업에도 기대하게 되는 앨범이다.
202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