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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hedir - Before the Last Light is Blown (n5MD, 2023)

 

Shedir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이탈리아 전자음악가 Martina Betti의 앨범.

 

2017년, 다크 앰비언트 계열에서는 긴 역사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Cyclic Law 레이블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출신 신인 뮤지션의 풀-랭스 앨범을 발매한다. 평단과 대중의 콘 호평과는 달리, 정작 앨범을 발표한 셰디르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그 어떤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3년 간격으로 선보이는 정규 녹음 외에는 특별한 개인 활동이나 협업조차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데뷔 앨범 Falling Time (2017)에 이어 3년 만에 선보인 Finite Infinity (2020)에서도, 마르티나는 자신만의 어둡고 고요한 음악적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그녀의 음악은 다크 앰비언트의 통상적인 접근에서 종종 보이는 디스토피아나 사이파이적인 세계관을 전혀 담아내지 않았고, 종교나 신화에서 전하는 공포와 권위의 메시지를 다루지도 않으며, 심령이나 미스터리와 같은 테마 또한 전혀 무관하다. 그녀의 음악은 자신이 속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것이 마르티나의 데뷔 초에 ‘사르데냐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종교, 문화, 언어 등의 고유함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지리적 요충지이기에 역사적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현재도 나토와 미국의 군사기지가 주둔하고 있어 한때는 분리주의와 급진좌익의 거점이기도 했고, 오래된 산업 시설로 인한 환경 문제 등으로, 일상 자체는 그리 녹녹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르티나의 음악이 어두운 색감을 지닌 것은, 이와 같은 환경의 영향이 크다. 실제로 그녀는 주변 공장의 불길한 소음과 배타적인 지역적 정서, 동시에 역사적 뿌리를 간직한 전통과 문화적 유산 등이 자신의 창작 과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어두운 분위기가 연출하는 무거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나의 음악은 감성적인 흐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이 지점은 다른 다크 앰비언트 뮤지션들의 작업과 차별을 이루는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정서가 대치와 대면을 이루며 연출하는 독특한 양면성은 다양한 사운드와 효과의 병치를 통해 나타나며, 음악의 흐름 또한 이와 같은 이질적인 감성이 서로를 포획하고 잠식하는 복합적인 내러티브를 완성하기도 한다.

 

이번 세 번째 앨범에서도, 이와 같은 마르티나 고유의 양가적인 분위기와 정서의 대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운드 디자인은 더욱 정교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폴리포닉한 음향이 품고 있는 고유한 떨림과 그 질감만으로도 불안과 고통, 모호함과 이질감 등의 다양한 감정선을 자극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다면적이면서도 불편함을 간직한 소리들이 현실의 묘사와 같은 특징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듯한 모습처럼 전달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음악의 흐름 속에 서로 다른 캐릭터를 지닌 사운드가 서로 중첩하거나 교차하면서 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은, 마치 의식의 흐름을 반영한 듯한 형상으로 전달되기도 하여, 때로는 예측에서 벗어난 의외성을 지닌다는 것도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전자 음악에서 익숙한 고전적인 악기의 사운드가 종종 등장하기도 하는데, 해당 음향이 전자 음악의 역사 속에서 활용된 상징적인 측면을 절묘하게 포착하면서도, 마르티나 특유의 공간에서 나름의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다크 앰비언트 씬에서 데뷔했지만, 마르티나의 음악이 지닌 정서적 반영이라는 측면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실험적인 앰비언트의 장르적 특성을 다루는 n5MD와 같은 레이블에서 그녀의 작업을 포함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켜켜이 쌓아가는 소리와 질감이 완성하는 어두운 물리적인 공간 속에, 심리적인 점멸과 떨림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는, 이 모든 과정의 자연스러움은 마르티나의 음악을 더욱 심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앨범 또한 그러하다.

 

 

202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