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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ion Dey - Folding Walls (Manners McDade, 2021)

영국 작곡가 겸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 Sion Dey의 앨범. 지금까지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와 같이 주로 영상 관련 음악 작업들을 이어왔는데, 이번 녹음은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표출되었던 시온의 음악적 세계관을 앨범의 형식으로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지난 작업들은 그의 음악적 특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아쉬울 만큼 짧은 단편들이 주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상이 워낙 강하게 작용해 이번 앨범에 대해 큰 기대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그의 작업들은 삶과 죽음, 혹은 그 경계에서의 생존 등 주로 무거운 주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우연이겠지만 이번 앨범 또한 지난 영상 음악 작업이 연상되는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시온은 이번 앨범의 주제를 기억과 정신적 외상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분위기는 물론 음악적 디테일 또한 그에 걸맞은 특징들을 보여준다. 바이올린과 첼로 등의 현악기와 피아노가 주제를 풀어가는 메인 연주 악기로 등장하고 일렉트로닉을 이용한 섬세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통해 정서적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어,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음악적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실내악적인 구성 형식을 통해 음악을 전개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동일 공간 속 평면적인 좌우의 위상이 아닌 각각의 개별 악기들이 저마다 각자의 거리와 장소 속에서 연관의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펠트 한 피아노, 날이 선 명료한 바이올린, 강한 울림의 첼로 등 개별 악기마다 각기 다른 리버브와 텍스쳐를 통해 마치 공시성과 통시성이 교차하는 어느 한순간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라인들은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이루고 있어 온전한 정서적 일체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확실히 시온이 언급했던 기억과 정신적 외상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확실히 부합한다는 느낌이다. 정서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는 듯한 앨범이다.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