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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norri Hallgrímsson - I Am Weary, Don't Let Me Rest (Moderna, 2023)

 

아이슬란드 작곡가 겸 프로듀서 Snorri Hallgrímsson의 앨범.

 

1989년생인 스노리는 음악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합창을 비롯해 여러 악기를 익히게 되었고, 시절부터 영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아이슬란드와 미국에서 작곡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졸업 후 합창단과 실내악을 위한 프로젝트는 물론, 단편, 영화, TV 등을 위한 작곡에도 기여했는데, Ólafur Arnalds와의 인연을 통해 The Chopin Project (2015)나 Island Songs (2016) 등의 앨범 참여는 물론, Broadchurch (2015-2017)와 같은 TV 시리즈에서는 함께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며 BAFTA를 수상하기도 했다.

 

모던 클래시컬 및 영화 음악과 깊이 연관된 스노리의 음악은 피아노와 스트링을 중심으로 하는 통상적인 양식은 물론, 오케스트라나 합창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유형을 포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유형과 양식은 주로 영화 혹은 TV 시리즈 작업을 통해 접할 수 있는데, 극의 진행에 따른 내러티브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내성적인 특징을 적절한 순간에 절묘하게 담아내는 모습을 통해, 스노리만의 음악적 감성을 엿볼 수 있다. 미스터리나 스릴러 등의 장르물에 특화된 그의 사운드는 내밀하면서도 신중하고, 깊은 정서적 동요까지 포착하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스노리가 지금까지 선보인 개인 작업은 기존의 영상 작업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궁극에는 그가 보여준 신중함과 섬세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내성적인 감성을 소리로 표현한 듯한 깊이를 보여준다. 이번 앨범은 그의 데뷔작 Orbit (2018) 이후 선보인 두 번째 정규 작업으로 기록되지만, 중간에 선보인 여러 EP나 다수의 OST를 포함한다면, 스노리는 지금까지 쉼 없이 꾸준히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쳤어, 나를 쉬게 하지 마’라는 제목에서는 고단함마저 느낄 수 있다. 이번 작업에는 Viktor Orri Árnason이 지휘하는 Reykjavík Recording Orchestra를 비롯해 Vera Panitch, Karl James Pestka, Ásta Kristín Pjetursdóttir, Unnur Jónsdóttir 등의 현악 연주자, 클라리넷 Baldvin Ingvar Tryggvason, 트롬본 Ingi Garðar Erlendsson 등을 포함해 Voices of Ulysses 합창단 등이 각각의 개별 트랙에 참여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은 물론 솔로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실내악적 구성 등을 포괄하는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스노리가 선보인 여러 양식의 작업을 통합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실제 그의 이전 작업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 작업은 하나의 고유한 분위기를 바탕에 두고 있으며, 이에 기반해 각 트랙의 개별적 특징도 반영한 인상적인 음악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다. 그 분위기는 스노리를 상징하는, 내밀하면서도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전달하는 섬세하고 신중한 모습과 연관되어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구성의 변화와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지속성을 지닌다. 극적 요소를 최소화한 미니멀한 테마에 차분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진행이지만, 기악적 톤과 텍스쳐의 섬세한 조율을 바탕으로 각 악기가 지닌 상징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차분한 피아노의 도입 첫 음만으로도 트랙의 모든 내용을 응축한 듯한 강렬함은 물론, 가늘고 여린 현의 울림 속에 담긴 미세한 텍스쳐만으로도 다면적인 정서적 우울감을 포착하기도 하여, 이번 작업에서는 개별 사운드가 지닌 역할과 기능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앨범은 내면의 감정과 그 흐름에 주목하고 있지만, 음악을 이루는 각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우울한 정서를 한 폭의 풍경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진솔하게 풀어 내려가기도 한다. 악기들의 내밀한 조합으로 연출한 서정의 멜랑콜리는 물론, 사운드스케이프가 완성하는 시네마틱한 정경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스노리의 고유한 음악적 언어와 표현에 온전히 수렴하고 있다. 일체의 과잉이나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도, 그 모든 순간이 깊은 울림으로 도달하고 있는, 완벽한 앨범이다.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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