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Soft Machine - Other Doors (Dyad, 2023)

 

영국 재즈-록 그룹 Soft Machine의 앨범.

 

1960년대 말 영국, 세계 대전 이후 보수화된 정치적 분위기와 냉전의 질서가 강요하는 시대적 공포는 새로운 저항의 양식을 잉태했으며, 이는 전문가 혹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하는 발언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각자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실천을 통해 구체화한다. 때로는 목적의식을 지닌 행동일 수도 있고, 혹은 시대상을 반영한 자생적인 욕망의 표출일 수도 있겠지만, 음악 또한 자신들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뮤지션과 새로운 장르적 표현이 탄생하게 된다. SM의 출발 또한 이와 같은 당시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1966년에 결성한 SM은 수많은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도 현재까지 그 명맥과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6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여러 이유로 Soft Head, Soft Heap, Soft Ware, Soft Works 등의 그룹들로 분화하기도 했고, 밴드에 몸담았던 핵심 멤버들이 Soft Bounds, Soft Mountain 등을 결성하는 등, 현재까지 SM과 인연이 있는 20명이 넘는 뮤지션들만큼이나 복잡한 계보와 족보를 지니고 있다. 현재의 SM은 2000년대 초, 서로 각기 다른 시기에 그룹에서 활동했던 기타 Allan Holdsworth, 색소폰 Elton Dean, 베이스/기타 Hugh Hopper, 드럼 John Marshall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Soft Machine Legacy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후 2010년대 중반, SM의 명칭 사용과 관련한 법적 논란이나 분쟁을 우회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재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사이 SML 멤버들의 노령에 따른 은퇴와 사망 등이 겹치면서 기타 John Etheridge와 색소폰/키보드 Theo Travis가 새로 합류했고, Hugh Hopper를 대신해 최근까지 베이스를 담당했던 Roy Babbington 또한 새로운 젊은 후임으로 Fred Thelonious Baker를 지명하게 된다.

 

Hidden Details (2018) 이후 SM의 이름으로 발매한 이번 앨범은 밴드에 새롭게 합류한 프레드 베이커의 첫 녹음이며,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팀에서 활동했고 SML을 거쳐 현재까지 함께했던 드러머 존 마샬의 마지막 은퇴 리코딩이기도 하다. 건강 문제로 최근 팀을 떠났던 로이 배빙턴이 특별 게스트로 일부 트랙에 참여하고 있으며, 현 라인-업의 새로운 신곡은 물론 “Joy of a Toy”나 “Penny Hitch”와 같은 6, 70년대의 원곡도 새롭게 재현하고 있고, 밴드와도 오랜 인연이 있는 고 Jon Hiseman의 Temple Music Studios에서 라이브 형식의 리코딩을 진행하여, SM의 역사성을 반영하려고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앙상블을 중심으로 하는 밴드 특유의 구성 속에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개방하며 플로우를 완성하는 접근은 통상적인 SM의 진행은 물론 6, 70년대 재즈-록의 흐름과도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각 악기의 조율된 사운드가 재현하는 음향은 사이키델릭으로 상징되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며, 테마에서 각각의 파트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는 유니즌 프레이즈는 SM 특유의 볼드한 공간 연출과 몽환적인 사색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다분히 기존의 전통을 연상하게 하는 사운드 튜닝을 의도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그 조화에 있어서는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한 다양한 대비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각 공간의 자율성을 개방하여 개별적인 능동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균형에 본능적으로 수렴하는 듯한 상호 의존적인 강한 내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존 곡들을 새롭게 재현하는 방식에서 과거와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 있지만, SM의 현재와의 연관성은 물론 60년 가까운 음악적 가치에 대한 인식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특히 신구의 조화로 완성한 “Now! Is The Time”과 같은 곡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세대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SM의 지속 가능성을 자신들의 연주와 음악으로 증명하는 듯하여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시대에 함께 탄생한 여러 뮤지션과 밴드가 현재는 역사 기록물의 아카이브로 남아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그 명맥과 역사성을 지속한다는 점은 경이로운 일이다. 단지 그 존재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나름의 현재성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지속하기 위한 창의성을 갱신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SM의 앨범은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번 앨범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노장에게 경의를, 새로운 역사를 위해 합류한 신진에게는 축복을!

 

 

2023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