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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tumbleine - Spirit and the Decay (self-released, 2022)

Stumblein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영국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Peter Cooper의 미니 앨범. 피터는 2010년대 초에 데뷔하면서 일렉트로닉의 대중적인 언어들을 취합해 감각적인 표현을 완성한 일련의 작업을 선보인다. 주로 IDM, 다운템포, 칠웨이브 등의 유형적 특징을 드러내곤 했는데, 이후의 작업은 비트의 사용을 조금씩 제한하거나 기타나 연주 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라인의 비중을 높이는 등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화들이 그의 초기 작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Sink into the Ether (2020)만 하더라도 기존 초기의 특징은 물론 새로운 경향성이 비교적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예전과는 다른 접근을 부분적으로 선보이는 등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미니 앨범은 부분적으로 선보였던 새로운 음악적 접근에 집중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준다.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일렉트로닉과 록의 결합을 슈게이즈 특유의 냉소적인 분위기를 앰비언트적인 공간 속에서 융합하여 독특한 몽환적 외형을 연출한다. 기타와 피아노와 같은 연주 악기의 라인이 진행에서의 중요한 배열을 이루지만, 그 주변에 다양한 사운드와 이펙트를 중첩하여 마치 멜로디가 일상 공간 주변의 다양한 매질을 통해 굴절되어 전달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공간계 효과를 이용해 멀리서 전해지는 듯한 연주 악기의 소리에, LP와 같은 여러 아날로그 노이즈를 덧입혀 로우-파이의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연출하고, 고전적인 전자 악기를 이용해 완성한 듯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물론, 보이스나 일상 소음 등의 필드 리코딩을 활용하기도 한다. 미니멀한 루프의 반복을 활용한 비교적 단조로운 연주에, 전체적으로 활용된 요소들 또한 무척 익숙한 것들이지만, 피터는 이를 앰비언스의 공간 안에 섬세하게 레이어링 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이는 익숙하면서도 다분히 낯선 경험을 제공하는데, 마치 꿈속에서 과거의 현실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듯한 묘한 몽환과 향수를 느끼게 한다. 과연 이와 같은 표현이 이후 피터의 작업에 전면화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16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번 EP에서 보여준 독특한 분위기만으로도 그의 음악적 매력을 경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202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