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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ylvain Daniel - Palimpseste (ONJ, 2018)


프랑스의 베이스 연주자 실뱅 다니엘의 신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음악적 행보를 보여준 실뱅이지만 이번 음반을 발매한 레이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현재 Orchestre National de Jazz의 멤버이기도 하다. 재즈가 지닌 정형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표현과 장르적 접합의 실험을 이어온 ONJ로서는 실뱅처럼 창의성 번뜩이는 뮤지션과 함께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Laurent Bardainne (sax), Manuel Peskine (p, key), Mthieu Penot (ds) 등이 참여한 이 앨범에 실뱅은 '디트로이트 폐허로 상상 여행'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실뱅은 Yves Marchand와 Romain Meffre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디트로이트의 황폐한 모습을 담은 사진집 'Ruins of Detroit' (초판 2010)을 이번 앨범의 모티브라고 밝힌다. 신분이 해방된 아프리카 강제이주 미국인들을 노동자로 수용하며 성장한 도시였지만 그들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여전히 제약되었고, 대도시에서 밀려와 일용직으로 전락한 백인들의 삶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음악과 관련해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Dreamgirls (2006)와 8 Mile (2002)에서 모타운이나 힙합을 다루고 있지만 록이나 블루스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이며 테크노 음악의 탄생지로도 알려졌다. 앨범에서 실뱅은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발전한 다양한 장르적 흐름들을 포괄하려는 듯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앨범 전체적으로는 볼드한 톤을 유지하며 러스티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익숙하기 때문에 더욱 괴이하게 들리는 실뱅의 음악들은 때로는 디트로이트와 전혀 무관한 장르적 특정으로 비치기도 한다. 어쩌면 실뱅은 과거 화려함 이면 속에 감춰져 있던 불안에 대한 기억을 복원했을 수도 있고, 이브와 로메인의 사진들을 보며 '팔렝프세스트'에 의해 굴절된 음악적 기억의 재구성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든,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이번 음반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실뱅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임은 분명하다.

2018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