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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The Necks - Travel (Northern Spy, 2023)

 

호주 재즈 트리오 The Necks의 앨범.

 

더 넥스는 피아노/오르간 Chris Abrahams, 베이스 Lloyd Swanton, 드럼/퍼커션 Tony Buck 등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뮤지션들로 이루어진 트리오로, 1987년 결성 이후 지금까지 공식 및 비공식 릴리스 포함 20여 개가 넘는 앨범을 선보이고 있다. 멤버들 각자 해당 분야에서 중요한 입지를 다질 만큼 호주 음악 씬에서 차지하는 역할 또한 클 뿐만 아니라, 개별 활동을 포함 여러 뮤지션과의 협업을 통해 선보이는 작업 역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만큼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 넥스지 지난 35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지금까지도 자신들만의 음악적 독창성을 담은 성과를 꾸준히 발표한다는 점은 존경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더 넥스는 작곡과 즉흥의 유연성을 확장하는 긴 호흡의 음악적 전개를 통해 몰입적인 사운드의 공간을 완성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트리오로 유명하다. 앨범 하나에 1시간 넘는 긴 테마의 반복과 즉흥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며, 친절한(?) 몇몇 녹음의 경우 20여 분 전후의 짧은(!) 테이크를 나누어 싱글이나 EP 혹은 풀-렝스 리코딩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긴 호흡은 짧은 몇 마디로 이루어진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테마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입과 주제 이후 자율적 개방 공간을 통해 솔로를 진행하는 전통적인 진행방식과는 달리, 더 넥스는 이러한 테마를 마치 루프와도 같이 무한 반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이를 확장, 해체, 추상, 구체 등 매번 각기 다른 방식의 접근을 응용하며 몽환적인 연주를 이어간다.

 

이번 앨범은 20여분 전후의 4개 트랙 총 77분 분량의 연주를 수록하고 있다. 정규 릴리스로 19번째 앨범에 해당하며, 스튜디오에 모여 트리오 즉흥 연주로 하루를 시작하는 더 넥스의 최근 연습 과정을 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라이브 형식의 스튜디오 세션을 담고 있으면서, 오버 더빙을 통해 새로운 악기 연주의 계층을 더하기도 했고, 즉흥의 공간을 선명하게 관찰하고 음향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목격할 수 있도록 후반 작업을 거쳐 형식적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본인들 스스로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에 진행했던 “라이브 공연에 가장 가까운 느낌”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을 만큼, 이번 녹음은 스튜디오와 라이브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더 넥스의 최근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앨범의 녹음과 혼합은 더 넥스의 제4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지니어 Tim Whitten이 담당했다.

 

드라이한 공간에서 무의식적 반복이 이루어지는 베이스와 드럼의 라인 위로, 리버브가 더해진 투명한 피아노 사운드로 직관적인 의식의 반응을 펼치는 듯한 자연스러운 프레이즈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마치 구조화된 일련의 반복적 패턴으로 인해 개인적 표현이 개입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견고함을 보여주면서도, 유연한 긴장이 연출하는 독특한 그루브로 강한 몰입을 유도하며, 우리가 의식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이들의 연주는 시작점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진화를 준비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진행이 이어지면서 전자 기타와 하몬드의 점진적인 오버 레이어링을 통해 점차 부피를 더해가며 반복적인 리듬 패턴은 더욱 정교해지고, 베이스 워킹과 드럼 비트 또한 이러한 확장에 맞춰 차츰 표현을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일련의 테마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 간의 인터랙티브 한 즉흥적 교감을 통해 진행 양식을 발견하는 듯한.. 이러한 과정에서도 각자의 주관을 즉각적으로 개입시키기보다는 상호 의존성의 점진적인 확장을 통해 음악적인 유기성을 점증하는 방식의 진행을 택하고 있어, 그 신중함과 섬세함이 만들어내는 균일한 벨런스는 단 한순간의 흐트러짐 없는 일관된 톤을 지속하기도 한다. 각 공간의 역할이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각자가 단순히 기능적 제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별적 표현이 상대의 호흡을 통해 반응하고 하나의 집단화된 표출 양식으로 발전하는 과정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보면, 통상적인 음악적 쾌감이나 몰입과는 다른 더 넥스만의 독창적인 집단화된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연주 악기를 활용해 마치 일렉트로닉의 정교한 시퀀싱을 재현한 듯한 인상을 주는가 하면, 원시 주술 제례를 오늘날의 음악 언어로 재현한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우리의 무의식을 향해 한 걸음씩 신중하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어, ‘여행’이라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즉흥의 새로운 양식과 트리오의 새로운 유형을 경험할 수 있는 앨범이다.

 

 

2023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