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뮤지션 Birk Gjerlufsen과 Sebastián Santillana의 듀오 프로젝트 Vanessa Amara의 앨범. 2013년 3인조로 결성되었고 이후 듀오로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VA의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은 흔히들 일렉트로닉을 이용해 만드는 드론이나 루프 백 같은 효과를 아날로그 장치들을 이용해 연출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실제로 가상 악기나 신서사이저 대신 피아노, 첼로, 오르간, 기타 등과 같은 연주 악기를 이용해 테이프 머신, 마이크, 스피커 등을 배열한 복잡한 렌더링을 거쳐 사운드를 굴절시켜 현실과 가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확장한다. 이와 같은 방식의 작업을 단지 스튜디오라는 통제된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라이브와 같은 개방된 환경에서 재현하고 있어 실험적인 창의에 즉흥적 모티브를 활용하는 과감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의 음악은 거의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생생한 현장을 반영하고 있는데, 듀오로 재편된 2016년 이후 최근인 2020년까지의 공연 기록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는 Music for Acoustic Instruments & Feedback (2021)이 좋은 예다. 이번 작업은 새로 녹음한 곡에 기존 라이브 2편을 더해 총 9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연주에 사용한 악기들을 제목으로 달고 있어 청자를 위한 이해의 직관성을 제공한다. 기존 라이브 트랙은 여러 악기들을 복합적으로 혼용했지만 새로운 녹음은 대부분 단독 구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악기들로 구성된 트랙들의 경우 개별 레이어들은 각자 자신의 흐름을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여러 개의 대선율이 거대하지만 잔잔한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듯한 진행을 특징으로 한다. 때로는 우연적인 조우를 통해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언제 분절될지 모르는 긴장이 이어지는 모습은 숨 막히기까지 하다. 이에 비해 단독 악기들로 구성된 곡들은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의 음악적 텐션을 연출한다. 각각의 악기들이 고유의 음향들은 여러 장치의 렌더링을 거치면서 마치 이펙터를 통해 굴절된 듯한 사운드로 전해지는데, 이와 같은 독특한 리버브는 묘한 공간적 이미지를 연출하며 일상과 몽환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하는 듯한 모호함을 만들어낸다. 루프를 통해 반복되는 플로우는 마치 잠결에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기분도 들고, 때로는 이명 넘어 들려오는 일상의 소리들이 반복적인 균형을 이루며 흐르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다. 정적의 고요함을 음악으로 조직한 듯한 앨범이다.
202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