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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Vera Kappeler & Peter Conradin Zumthor – Babylon-Suite (ECM, 2014)


스위스 출신의 여성 피아니스트 베라 카펠라와 역시 스위스 태생의 퍼커션 주자 페터 콘라딘 줌터의 ECM 데뷔 앨범. 개인적으로는 이들 두 사람의 음악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카펠라의 경우 전위적인 락 성향의 트리오 앨범 한 장 들어본 것이 전부고, 줌터의 경우 실험적인 듀엣 컬래버레이션 앨범 몇 장이 이 번 앨범을 접하기 전에, 이들에 갖고 있던 인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도미니크 블룸과 줌터의 듀엣 앨범의 특징을 기억하고 이 앨범에서도 그와 같은 분위기가 전해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이번 레코딩에서 전해진 느낌은 전혀 달랐다. 어쩌면 카펠라와 줌터가 기존에 자신들이 선보였던 표현들에서 조금은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담아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라이너 노트에 적힌 사전적 정보에 의하면 이 앨범은 Origen Festival Cultural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것으로 2012년 7월에 처음 초연되었다고 한다. 구약의 다니엘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인간세상의 흥망에 대비되는 영원한 신의 나라에 대한 묵시적 기록이나, 부활과 구원에 관한 은유 등은 종말론적 사고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개인사의 서술 속에 숨겨인 은유와 상징을 음악적인 언어로 들어내는 것이 결국 이들 두 뮤지션이 이번 레코딩을 통해 수행해야 하는 과제인 셈이다. 적어도 텍스트를 이어받아 그 의미를 음악적인 콘텍스트로 전환시켜야 하며, 이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 또한 분명해야 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음악적 네러티브를 포기하는 대신에, 소리와 공간을 구분하는 방식을 통해 텍스트의 외연과 내연을 확정하고, 빈 공간을 소리의 잔향들로 체워 묵시적 상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든다. 이미 그 자체로 신비한 프리칭이 완성되지만 그 형식에 있어 너무 직설적이고 다분히 형이상학적이다. 은말한 속삭임처럼 들리는 레코딩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볼륨을 높이는 것이 두려웠다면, 음의 긴장을 구성하는 지점이나 표현의 정서에 있어서는 처음 이들이 의도했던 전략만큼은 성공적이었지 않았나 싶다. 

201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