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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Vera Kappeler & Peter Conradin Zumthor - Herd (Intakt, 2021)

스위스 피아니스트 Vera Kappeler와 드러머 Peter Conradin Zumthor의 듀엣 앨범. 서로 각자의 트리오와 쿼텟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오던 중 우연한 조우를 통해 완성하고 ECM을 통해 발매한 Babylon-Suite (2014)는 이들 듀오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다니엘서'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종교적인 메타포를 배제하고 현실의 환상에 가까운 놀라운 협업을 보여줬는데, 이후 이들은 오랜 기간에 거쳐 다음 작업에 대한 협의를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작업이 전작과 어떤 연관 속에서 진행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적어도 7년 전 이들이 보여준 다양한 양식의 공간적 합은 물론이고 두 악기 사이에 존재하는 소리의 대비와 대칭은 이번 앨범에서도 이들만의 유니크 한 음악을 완성하는 큰 힘으로 작용한다. 피아노와 드럼이라는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표출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건반이 지닌 타악적 성격을 드러나게 하고, 동시에 타악기로 연출하는 복합적인 사운드의 조합은 독특한 이미지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는 베라와 피터의 사운드가 서로 대비와 대칭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들은 이와 같은 가능성이 능동적인 합을 통해 하나의 음악적 표현으로 완성되고 이를 통해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발전시킨다. 제한된 기악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양한 뉘앙스를 지닌 다채로운 음악들을 완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곡들은 마치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내러티브를 포함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들의 연주는 편의상 재즈로 분류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합의의 방식은 전통적인 인터랙티브 한 상호작용과는 거리가 먼듯하며, 오히려 정교하게 구성된 일련의 체계를 긴밀하게 완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하모니나 폭발적인 불협은 물론 퍼커시브 한 진행 속에서 멜로디가 소멸하는 순간이나 토이-파이적인 조밀함으로 그간의 진지함을 무너뜨리는 등의 모든 장면들은 마치 나름의 개연성을 지닌 극적인 단편과도 같은 느낌이다. 단지 두 사람의 연주로 완성된 공간이지만 그 어떤 연주보다도 웅장하고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앨범이다.

 

202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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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a Kappeler & Peter Conradin Zumthor – Babylon-Suite (ECM,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