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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Verneri Pohjola & Mika Kallio - Animal Image (Edition, 2018)


핀란드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베르네리 포욜라와 드러머 미카 칼리오의 듀엣 신보. 이번 앨범은 10년 가까이 관계를 유지해온 두 뮤지션이 공동의 프로젝트를 위해 협업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작업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Perttu Saksa 감독의 다큐멘터리 Animal Image (2017)를 위한 음악이다. 공교롭게도 앨범의 길이는 영화 상영시간보다 긴 37분이다. 이번 앨범에서 베르네리는 트럼펫 외에도 전자 악기를 사용해 몽환적인 앰비언스를 연출하고 있으며 미카 또한 드럼 외에도 퍼커션과 공 등의 타악기를 이용해 추상적인 묘사를 이어가고 있다. 베르네리가 지금까지 발표한 일련의 작업과 연관 지어 이번 앨범을 살펴보면 지난 흐름에서 상당히 벗어난 매우 이례적인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비교적 전통적인 스텐스에서 작업을 이어왔던 베르네리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은 Pekka (2017)에서 보여줬던 재즈-록적인 접근은 이번 앨범과 비교해보면 단순한 애교로 볼 수 있을 만큼 이번 녹음에서의 입장은 전혀 새로운 지반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베르네리의 전작에서 보여줬던 미카의 모습과 이번 앨범에서의 태도 또한 전혀 다르다. 재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표현주의적인 아방가르드의 특징들을 따르고 있으면서, 때로는 엑스페리멘탈한 앰비언트적 요소도 경험할 수 있는 무척 복합적인 표현들이 존재한다. 연주는 두 뮤지션 사이의 상호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느낌보다 영상 속 대상과 움직임에 따라 각자의 합의된 반응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와의 대비는 의외로 뛰어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두 연주자 사이의 상호 긴장과 간섭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음악 그 자체로는 예상외의 이미지너리한 공간감을 연출하고 있다. 집약적이고 추상적인 미니멀한 베르네리의 프레이즈와 잔잔한 물 위에 물감이 번지는 듯한 미카의 점묘적 타악은 가장 느슨한 인터플레이를 통해 극적인 합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음악이 녹아든 뛰어난 영상과 함께 감상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20180614

cf. 매우 공교롭게도 베르네리와 미카의 앨범보다 불과 몇 달 앞서 발표된 Arve Henriksen와 Terje Isungset의 The Art of Irrigation (2017)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들었는데, 서로 다른 접근 방법으로 제작된 두 음반이지만 그 결과에서 보여준 형식적 유사함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 앨범을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비록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과정일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일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