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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We Were Heading North - Lightness (El Hombre Bala, 2018)


스페인의 포스트-록 그룹 WWHN의 신보. 2014년에 기타리스트 Ione Rodríguez가 중심이 되어 포스트-록이라는 음악적 지향을 목표로 결성된 WWHN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결국은 스페인 내 다른 그룹에서 활동 중인 여러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 녹음과 공연을 진행하는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 형태로 진영을 갖추게 된다. 이번 녹음은 We Were Heading North (2016)에 이은 두 번째 작업으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정식 앨범이 아닌 EP로 발매되었다. 이번 EP의 녹음은 로드리게즈 자신을 포함해 10명의 뮤지션들이 참여했는데, 보통 한 곡 당 5-6명의 연주자들이 번갈아 가며 리코딩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전작의 제작 사례와 첫 음반 발표 이후 5-7명의 편성으로 여러 차례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축적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적인 내용이나 분위기에서는 전작과 유사하지만 보다 더 풍부한 볼륨감이 느껴지는 사운드의 스케일에서는 확실히 진화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하나의 곡에 3개의 기타 트랙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만드는 라인은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프로그래밍과 키보드로 제공되는 정교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WWHN 전체의 음악적 치밀함과 맞물려 깊이 있는 느낌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단순히 사운드가 제공하는 만족감에 머물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다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있어 완성된 사운드는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감정의 흐름이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나 표제의 의미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음악적 서술 능력은 탁월하다. 이러한 묘사와 서술이 그 어떤 대상이 아닌 스스로의 내부로 향해 있는 듯한 슈게이즈의 독특한 태도가 연상되기도 한다. 유럽에서 조차 사막에서 설교하는 행위로 치부될 만큼 마이너한 포스트-록 신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한 로드리게즈의 노력에 337 박수 한 세트 보낸다.


2018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