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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Wolfert Brederode - Ruins and Remains (ECM, 2022)

 

네덜란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Wolfert Brederode의 앨범.


볼페르트는 헤이그 왕립 음악원에서 클래식과 재즈를 전공한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연주 및 작곡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 경력을 축적한다. 그는 스위스 가수 Susanne Abbuehl과의 협업을 계기로 2000년대 초 ECM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시적 표현을 음악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섬세한 조율과 깊이 있는 공간 연출을 통해 20년 가까운 협력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볼페르트는 ECM을 통해 두 장의 쿼텟 녹음과 한 장의 트리오 앨범을 선보이는데, 이들 작업에서는 재즈와 클래식의 전통은 물론 주변의 여러 장르로부터 기원하는 표현을 자신만의 통합적인 음악적 언어를 활용해 연주 공간 속에서 재현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레이블의 주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번 녹음은 20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초연한 “Ruins and Remains”와 그 시리즈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볼페르트는 여기에 더 넓은 의미와 개인적 사색을 담아 현재의 앨범으로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내연의 확장에는 오늘날의 감염병 사태와 관련한 정서적 반영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한 세기의 간격을 두고 나타난 전쟁과 팬데믹의 우울감을 다루면서도, 볼페르트는 인간의 회복력에 대한 개인적인 열망을 음악으로 조심스럽게 담아내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기존 앨범에서 다뤄진 낭만적 우울감이, 참혹한 현실의 반영을 통해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바뀐 것은 조금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여전히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적 지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앨범은 바이올린 Maria-Paula Majoor와 Daniel Torrico Menacho, 비올라 Karsten Kleijer, 첼로 Arno van der Vuurst 등으로 이루어진 Matangi Quartet과 드럼/퍼커션 Joost Lijbaart와의 녹음을 담고 있어, 볼페르트가 기존에 선보였던 작업과는 다른 형식적 구성을 보여준다. 요스트는 볼페르트와 15년 이상 여러 프로젝트에서 함께 협업을 진행해왔으며, One ‎(2006)과 같은 인상적인 듀오 작업을 남기기도 했다. MQ는 볼페르트와 헤이그 왕립 음악원 동문들로 전해지며, 이번 녹음 외에도 연극 및 무용을 위한 여러 작업을 통해 오랜 기간 음악적 교류를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MQ는 바로크에서부터 현대 작곡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보유하면서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재즈는 물론 실험적인 음악적 표현에도 능동적인 표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포맷이 볼페르트의 음악적 양식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자체가 자신의 음악적 지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한편에서는 기존 쿼텟이나 트리오 작업에 내재되어 있던 다면적인 특성을 해체하고 이를 새로운 형식을 통해 재구성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실제로 피아노가 드럼을 비롯해 쿼텟 및 개별 현악기와 맺는 다양한 방식의 음악적 연관은, 클래식적인 특성이 전면에 부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합적인 장르적 양식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반복적인 일련의 테마를 중심으로 조성이나 하모니의 변화를 새로운 공간 구성의 모티브로 활용하는데, 때로는 고전적인 실내악적 규범을 연상하게 하는 엄밀함이 강조되는가 하면, 개별 라인과 맺는 다양한 방식의 인터랙티브를 개방함으로써 매시브 한 임프로바이징을 떠올리게 하는 자율적 표현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상반된 양식의 대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팩트럼을 풍부하게 활용함으로써 그 간격을 무효로 하는 듯한 모습은, 그 두 가지 접근 자체가 사실상 하나의 음악적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며, 이는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는 물론 작곡과 즉흥의 관계 또한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음을, 음악적 실천을 통해 증명하려는 듯하다. 또한 MQ의 연주는 다양한 주법과 여러 텍스쳐를 동시에 다루며, 그 표현에서도 일상적 통념과는 다른 모습을 종종 드러내기도 하는데, 고전적인 대위적인 연관은 물론, 전경의 라인과 배경의 사운드스케이프의 인과적 표현을 이용한 진행이나, 레가토와 비브라토의 조합을 이용한 드론의 표현은, 마치 일렉트로닉을 어쿠스틱의 공간에서 재현한 듯한 인상을 주며, 전체적인 음악적 내연을 풍부하게 채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요스트의 드럼과 퍼커션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건반과 현악의 다면적인 추상적 공간에, 여러 소재의 타악을 다양하게 조합해 이미지너리 한 표현의 구체성을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건반과 현악의 공간적 유기성을 견고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확장에도 관여하기도 하여, 앨범 전체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완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무엇보다 비극과 슬픔 앞에서 볼페르트가 보여준 음악적 의연함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복잡한 감정을 다루면서도,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는 앙상블을 통해 진솔하게 드러내는가 하면, 막연한 낙관 대신 한 세기 전의 역사에 대한 반추를 통해 조심스럽게 회복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음을, 복합적인 장르적 스펙트럼을 통해 표현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음악이 지닌 힘을 믿기에 가능했던 작업이 아닐까 싶다.

 

 

202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