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그리스 출신 작곡가 지노비아 아르바니티니의 솔로 신보. 이번 앨범은 올해 Piano Day 행사에 맞춰 발매된 앨범이다. 피아노 건반 수에 맞춰 한 해의 여든여덟 번째 날에 시작하는 이 행사는 2015년 처음 개최했고 지금까지 매년 피아노 연주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과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앨범은 Hior Chronik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그리스 출신의 작곡가 Giorgos Papadopoulos와 결성한 듀엣 프로젝트 Pill-Oh의 Vanishing Mirror (2012)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업이라 지노비아 개인으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앨범은 6년 전 필-오의 작업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바닷가를 바라보는 뒷모습이 담긴 Aëla Labbé의 전작과 이번 앨범의 커버 아트뿐만 아니라 피아노, 일렉트로닉, 보컬, 현악기 등의 요소를 모던 클래시컬의 어법으로 조합하여 서정적 노스탤지어를 완성한 형식 면에서도 깊은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필-오 앨범에서 지노비아가 차지했던 음악적 언어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으로 읽힐 수도 있으며, 전작과 이번 앨범의 깊은 연관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필-오 앨범에서의 피아노와 일렉트로닉 사이의 일상적 긴장과 조화가 주요한 모멘텀이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피아노의 중심적 역할을 명확히 하는 대신 구체적 상황에 따른 디테일의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한다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후기 낭만주의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곡들은 일관된 음악적 언어와 균일한 톤으로, 마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일으키며 여러 요소와 조합을 이루면서 조심스러운 변화를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표제적인 성격이 강한 이번 앨범의 곡들은 일상의 여백과 경험의 공간 사이를 이으려는 듯한 정서의 내면을 이야기처럼 풀어가고 있다. 때문에 순간의 모티브 자체는 묘사적이지만 그 과정들이 모여 하나의 내러티브를 완성하기도 한다. 마치 현재의 순간을 기록으로 담아 몽환적 기억을 불러일으키려는 듯한 커버 작가 아엘라의 사진과도 묘하게 닮았다. 일상과 기억의 빛바랜 아이보리색 하모니인 셈이다.


2018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