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출신 드럼 및 퍼커션 연주자 즐라츠코 쿠찌쯔의 근작. 프리와 아방 씬에서 워낙 기세 등등한 노친이라 피아노와 베이스로 구성된 트리오 포멧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지 궁금했는데, 오~ 이건 좀 의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즐라츠코가 최근 몇 년 동안 발표했던 앨범들을 보더라도 이와 같은 기본적인 트리오를 라인업으로 레코딩을 진행한 것 자체가 의외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타악기가 각각의 악기나 보이스와 마찰하며 형성하는 이미지들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피아노가 참여한 레코딩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만 연달아 2장을 피아노/베이스 트리오로 녹음했는데(뭐.. 60세 기념인가?), 이번 앨범의 경우 Stefano Battaglia (피아노) / Dalla Porta (베이스) 콤비가 참여하고 있다. ECM이나 Splasc(H) 앨범에서 자주 접했던 스테파노의 기본적인 피아노 스타일은 이 앨범에서도 잘 재현되고 있다. 베이스의 공간 또한 의외로 넓을 뿐만 아니라 스타일 면에서도 무척 다양하다. 그만큼 즐라츠코는 자신의 오리지널을 연주하는 피아노/베이스 콤비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주고, 그것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완성해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안방의 침대까지 내주고도 집주인의 권위를 잃지 않는, 짬밥과 연륜이 이 앨범에 담겨있다.
201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