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Ghost - Sundown (Cryo Chamber, 2022)
프랑스 전자음악가 Pierre Laplace의 Beyond the Ghost 프로젝트 앨범. 피에르가 BtG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루는 음악적 내용은 근미래 유럽 전역에서 발발할 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Europa Series로 집약되는 듯하다. 작년 초 해당 시리즈가 시작되었을 무렵만 하더라도 감염병 사태로 인한 위기가 서구 문명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현실적 쟁점으로 부각된 상황이라, 유로파 연작이 다루는 전쟁이라는 어젠다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지역 동맹과 군사 패권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유럽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전면전이 현실화된 지금, BtG의 음악적 메시지는 묘한 호소력을 지닌 듯하다. The Last Resort (2021)에서는 전운이 감도는 2060년 독일의 불안한 현실을 다루고 있었고, The Desolation Age (2021)가 전쟁 직후인 2061년 런던의 상황을 서술했다면, 이번 앨범은 그 이듬해인 2062년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2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세력 간 전면전의 양상과 더불어 지역 내 권력 암투를 배경으로 하는 국지전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힘의 이합집산은 그 전망을 더욱 예측하기 힘든 수렁으로 이끌게 된다. 유럽 전체로 확대된 전쟁의 참상은 이제 대의명분보다는 생존이 목적이 되었고, 로마에서는 살아남은 수십 명의 동맹군 병사들이 저항에 가담한 소수의 시민군을 상대로 교전을 벌이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음악은 고유한 서사적 진행과 더불어 구체적 상황에 대한 묘사적 특징을 담아내며 전개된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전체적인 내러티브보다 개별 상황에 따른 묘사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만큼 각각의 트랙이 지닌 특징들이 독특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이는 마치 전쟁이 일상화된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공포와 불안보다는 생존을 향한 본능을 더욱 직설적으로 담아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대 문명의 유산을 간직한 로마의 특징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여로 종류의 어쿠스틱 악기들을 배열해 긴장과 비장함이 지속되는 앙상블을 완성하고 있고, 일렉트로닉의 텍스처 또한 날 선 느낌보다는 황패 해진 미래 현실의 다양한 이면을 다루는 듯한 복합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일부 트랙에서 드럼의 록 비트, 퍼지 한 기타 사운드, 여성 보컬의 허밍 등,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을 활용한 묘사는 다분히 고전적인 표현이면서도, 그만큼 전쟁이 생존을 위한 일상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도 갖게 한다. 피에르가 이번 앨범을 완성하면서 현재의 러우 상황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을 근미래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운드만을 이용해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서술적 특징보다 묘사적 성격을 부각하고 있다는 미묘한 변화에서, 어느 정도는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지 않았나 짐작하게 된다. 때문에 이번 앨범에서는 현실에 대한 엄중한 경고처럼 느껴지며, 동시에 다음에 다룰 시리즈의 배경은 어디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20220412
related with Beyond the Ghost
- Beyond the Ghost - The Last Resort (Cryo Cham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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