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Gregson - Quartets: One-Four (Deutsche Grammophon, 2022)
스코틀랜드 첼리스트 겸 작곡가 Peter Gregson의 앨범.
피터의 작업은 모던 클래시컬 혹은 현대 작곡의 범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창의적 진지함의 주요한 성과를 요약하는 듯하다. 그의 곡은 엄숙한 고전주의와 감각적인 현대의 특징을 동시에 포착하는 놀라운 균형감을 보여주는데, 이를 단순히 전통적인 연주 악기와 일렉트로닉의 조합에서 비롯되는 외형적인 특성만으로 한정할 수 없으며, 피터의 음악적 언어와 표현이 지닌 깊이와 유연함에 주목해야 한다. 내성적인 진지함을 지닌 음악임에도 그의 곡은 대중과 수많은 접점을 만들어내며 큰 주목을 받기도 하는데, 스튜디오 녹음 외에도 영화와 TV를 위한 스코어는 물론 게임 분야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선보였으며, 안무 및 무대 공연을 지속적인 협업 과정에서도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게 된다.
피터의 음악은 첼로를 비롯한 현악기를 중심에 두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텍스쳐와 톤 외에도 다양한 표현의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음향적 접근을 꾸준히 선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전자 첼로와 같은 악기의 도입 외에도, 일렉트로닉과 그 효과를 활용한 복합적인 방식을 통해 구체적인 실현을 거듭하게 되고, 실제로 피터의 고전적이면서도 독특한 톤 사운드 샘플은 Spitfire Audio의 VST로 활용되어 창작자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와 같은 피터의 사운드는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고전과 현대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반영한 결과로 봐도 무방하다. 이번 앨범은 이러한 피터의 음악적 사고와 실천을 요약하는 훌륭한 예가 아닐까 싶다.
이번 앨범은 5년 전에 두 장의 EP로 발매한 Quartets: One (2017) 및 Quartets: Two (2017)와, 오늘 발표한 피터의 여섯 번째 정규 음반 Quartets: Three & Four (2022)를 함께 엮은 일종의 통합본이다. 4중주를 위한 피터의 작곡과 연주를 담고 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반영하기도 하며, 그동안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 뮤지션의 생생한 진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Quartets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여기에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새롭게 도입된 기술적 변화를 언급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청취 환경을 경험을 반영한 마스터링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일반적인 고해상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음원과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를 비교해보면, 세부적인 해상도의 차이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공간 표현과 그 안에서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의 정교한 배열은, 전작의 EP들과 이번 발표작과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공간 연출은 연주 악기와 일렉트로닉 및 그 효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피터의 음악적 의도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나름의 장점으로 전달되는 것도 사실이다.
마스터링과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 따른 공간 표현의 차이를 무시하더라도, 5년 전 연주에 비해 이번에 새로 발표한 곡 사이에는 피터의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반영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데, 신서사이저를 이용해 현악의 레이어를 대질시키는 통상적인 방식을 발전시켜, 일렉트로닉 그 자체의 텍스쳐와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때로는 어쿠스틱 악기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배음을 연출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현악의 테일에서 파생하는 듯한 섬세한 효과를 통해 그 배경을 더욱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관계는 분명 역할의 우위를 논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단순히 주종 혹은 선후의 연관으로 정의하거나 규정하기 힘든, 긴밀한 보완적 의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터 특유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연주 악기 중심의 편성과 진행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일렉트로닉이 완성하는 섬세한 사운드배드나, 다양한 전자 장치로 연출하는 디테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물리적 요소처럼 작용하며, 음악적인 플로우 속에서 상호 간에 긴밀한 인과성을 보여주는 대목은 무척 인상적이다. 전작 두 미니 앨범 Quartets: One & Two와 이번에 발표한 Quartets: Three에는 첼로 Richard Harwood와 바이올린 Warren Zielinski를 중심으로 하는 4중주가 참여하고 있고, Quartets: Four는 Carducci String Quartet의 연주로 완성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녹음 환경에 따른 미묘한 공간감의 차이도 엿볼 수 있다. 특히 CSQ의 연주를 담고 있는 “Three Parallels” 3부작은 현악기들 사이의 유기적인 배음과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 자연스러운 리버브만으로도, 현대적인 감각의 디테일을 완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상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터의 이번 앨범은 음악 분야에서의 기술적 성과가 어떻게 고전적 언어와 연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상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 그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이를 통합하는가에 대한 창의적인 사고를 집약하고 있는 듯하다. 작곡 및 재현을 통해 고전의 언어를 현대에 갱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중에 우리가 피터의 시도에 주목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앨범이다.
20221111
related with Peter Gregson
- Peter Gregson - An Evening at Capitol Studios: Bach Recomposed (Deutsche Grammophon, 2021)
- Peter Gregson - Untitled for 7 Dancers (Deutsche Grammophon, 2021)
- Peter Gregson - Patina (Deutsche Grammophon,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