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ika Nayar - Heaven Come Crashing (NNA Tapes, 2022)
인도계 미국 작곡가 겸 전자음악가 Rachika Nayar의 앨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Our Hands Against the Dusk (2021)로 데뷔한 라치카는, 앨범 발매 직후 단숨에 해당 음악 씬의 주요 인물로 급부상할 만큼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일렉트로닉 혹은 앰비언트의 통상적인 언어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장르적 표현을 강화하는 독특한 문법에서, 그녀만의 창의적인 음악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기타 사운드를 음악적 디자인의 주요 소스로 활용하면서도 이를 디지털 프로세스의 다양한 레이어링을 통해 여러 유형의 장르적 경계를 흐리는 라치카의 음악은, 복합적이면서도 모호한 신비감을 연출하여, 그 자체로 그녀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하는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선보인 미니 앨범 fragments (2021)에서는 이전 작업과는 전혀 다른 미니멀한 공간 구성 안에서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짧은 테마의 불연속적 묘사를 선보이게 된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포스트-록을 연상하게 하여, 얼핏 보면 색다른 시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존 작업에서의 기타 라인만을 요약한다면 이와 같은 음악적 형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이번 앨범과 관련해 해당 EP를 다시 듣다 보면, 어쩌면 이와 같은 형태의 연주가 라치카의 음악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적인 작업 영역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하게 된다.
이번 두 번째 정규 앨범은, 앞에서 언급한 라치카의 데뷔작과 EP를 통합한 새로운 사운드의 접근으로 볼 수도 있고, 미니 앨범에서 제시한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단편적인 여러 아이디어를 기존 작업에서 선보인 음악적 언어로 더욱 풍부하게 확장한 성과로 볼 수도 있을 듯싶다. 데뷔 앨범에서 보여줬던 경계의 모호함은 이번 작업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통합적 언어로 진화한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며, 이전에는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표현들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 내용에서도 풍부한 확장을 이루고 있다. 여전히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루프와 테마가 곡의 주요 근간을 이루며 사운드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 주변을 감싸든 요소는 무척 다양해진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마치 포스트-록의 내러티브를 이용해 진행을 이끌면서도,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구성과 요소를 포함하는 통합적인 완성을 선보임으로써, 확실히 기존 작업과는 다른 맥시멀리스트 한 면모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특히 미니 앨범에서의 미니어처와도 같은 기타 인주를 염두에 두고 듣다 보면,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를 확장해 새로운 음악적 세계관을 완성한 듯한 느낌이어서, 더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물론 이번 앨범 자체가 다루는 음악적 양식 또한 포괄적이다. 화려한 내러티브를 포함하는 시네마틱 한 구성의 연주에서부터, 단편적인 리타 루프의 반복과 중첩을 통해 완성한 밀도 있는 곡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는 포스트-록과 일렉트로닉을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일렉트로닉이 포괄하는 장르 내의 다양한 유형적 특징을 적극 포용하여, 신서사이저의 여러 음원을 이용한 풍부한 사운드의 활용은 물론, 비트와 스텝 시퀀싱 등을 응용한 복합적인 레이어링에 이르기까지, 다분히 복합적이면서도 정교한 공간 연출을 완성한다. 단순한 묘사적인 분위기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사운드 소스를 활용해 멜로디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웅장한 서사를 보여주는가 하면, 미니멀한 여러 라인을 중첩하여 다면적인 분위기의 서정을 밀도 있게 완성하는 등, 전체적인 곡의 양식에서도 다양성을 입증하는 듯하다. 인상적인 점은 이와 같은 복합성과 다면성이 라치카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한 분위기로 드러난다는 것인데, 그만큼 형식적 인과성보다는 본능적 의외성이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흥미롭고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Maria BC의 매력적인 보이스 피처링으로 완성한 두 개의 트랙도 포함하고 있어 앨범이 지닌 다면적인 성격을 더욱 인상적으로 포장한다. 도시적인 감각이 강한 빛을 발하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화려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정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우울감은 라치카 자신의 내면은 물론, 그녀의 음악을 듣는 우리의 모습까지 비치고 있는 듯하다. 감각과 정서를 압도하는 앨범이다.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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