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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Jeff Greinke - A Thousand Year Flood (Projekt, 2023)

 

미국 작곡가 겸 연주가 Jeff Greinke의 앨범.

 

제프는 1980년에 기상학을 전공하면서 작곡과 연주를 시작했고, Rob Angus와 레이블 Intrepid를 설립해 실험적인 구성을 지닌 일련의 전자 음악 작품들을 발표하며 본격 음악가로 데뷔한다. 이후 그는 작곡 및 연주 외에도 사운드 디자이너와 비주얼 아티스트 등으로도 활동하며, 영화 및 영상은 물론 무용과 연극을 비롯해 설치 예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음악을 작곡했고, 연주 악기에 대한 실험은 물론 스튜디오 프로덕션을 적극 도입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특징을 구축하는 한편,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직접 주도하면서 재즈와 민속 등과 같은 테마를 다루기도 한다.

 

그래도 제프의 음악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은, 대학 전공의 영향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기후 혹은 기상과 관련한 일련의 테마들로, 20편이 넘는 자신의 타이틀 중 상당수는 이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음악을 이루는 구성 또한 차츰 진화하는데, 최근에는 어쿠스틱과 전자 음향의 다양한 관계를 각 작업의 테마에 맞게 구조화하며,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모던 클래시컬 등의 다양한 특징들로 표출되는, 제프 음악의 종합적 양식을 구축하게 된다.

 

이번 앨범에 대해 제프는 “10여 년 전에 시작한 전자음악 작곡을 탐구한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최근에 선보인 일련의 앨범들 속에서 이미 자신의 관점을 완성형의 형태로 비교적 명확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전작들과의 연속성은 물론 이번 작품만의 고유한 특징에 주목하게 된다. 실내악적인 구성을 활용해 일렉트로닉과의 관계 속에서 앰비언트적 묘사를 보여준 기존 작업과 비교하면, 이번 앨범은 첼리스트 Heather Bentley와 제프의 피아노 및 전자 음향이 완성하는 일련의 연관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클라리넷 James DeJoie이 부분적으로 참여하지만, 전체적인 편성은 미니멀한 관계에 기반하고 있으며,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라인이 서로 복합적인 중첩을 이루며, 각각의 곡마다 고유한 흐름을 완성한다. 피아노와 일렉트로닉을 이용한 음악적 구성 내에 즉흥에 기반한 현악기의 자율적 라인의 다층적 배열을 통해 감정 혹은 정서의 이면을 반영하여, 개별 사운드의 다양한 위상의 변화와 공간의 분할을 통해, 유연한 구성과 고요한 흐름에 내재해 있는 유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한다. 이처럼 체계화된 양식보다는 미묘한 변화와 불연속성을 구조화하는 듯한 진행을 통해 제프 고유의 특징을 확인할 수도 있다.

 

펠트 하게 조율한 피아노는 릴리즈 끝단에 독특한 텍스쳐를 입혀, 비장하게 이어지는 연주에 불안감을 더하거나, 리버브의 긴 여운을 통해 공간의 밀도를 채우는 등, 묘사적 특징과 더불어 정서적 표현도 동시에 담아내기도 한다. 피아노 연주 그 자체만으로도 고유한 감정선을 지속하지만, 현악 라인과의 대비를 통해 미묘한 균열과 복잡한 분열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 라인으로 이루어진 첼로의 레이어링은 공포, 신비, 두려움, 긴장 등의 다면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하나의 단일한 감정의 흐름을 이어가는 피아노와의 관계에서 복잡 미묘한 배열을 이룬다. 개별 사운드의 구성은 비교적 명료하지만 각각의 요소는 넓은 음역대에서 다양한 텍스쳐와 음향의 캐릭터가 서로 대질과 조화를 이루며, 플로우 속에서 그 연관은 끊임없이 균형점을 이동하며 이미지를 다면화하는 등적인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구조화된 양식 안에서 정교한 위상과 화성의 규칙에 따라 일련의 분위기를 지속하는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는가기도 하지만, 균열과 대칭적 긴장을 통해 테마 고유의 묘사적 표현을 완성하는 것이 전반적인 특징이다. 피아노와 현악 및 관악 계열의 사운드가 이루는 다양한 대비와 대칭적 연관이 두드러지는 반면, 일렉트로닉은 둘 사이의 관계를 폭넓게 담아내는 듯한 관용적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 트랙에서는 전자 음향의 특징이 전면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묘사적 표현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또한 다양한 음향적 특징으로 구체화된 현악이나 건반의 라인을 견인하기 위한 도입이나 모티브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전자 음향의 캐릭터 자체는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핵심을 이루며, 마치 공기와도 같은 존재감을 보여준다.

 

각 곡의 제목과 긴밀한 연관을 이루는 묘사적 표현을 통해 표제적 성격을 보여주는 한편, 고유한 이미지로부터 연상할 수 있는 복합적인 정서적 반영 또한 인상적일 만큼 온전하게 제한하고 있다. 피아노와 첼로 연주를 중심에 둔 공간 구성을 통해 모던 클래시컬의 분위기를 부각하기도 하고, 앨범 타이틀에서 떠올리게 되는 고유한 분위기를 음의 밀도로 담아내는 앰비언트의 특징을 연출하기도 하며, 총체화된 음향의 조합이 이루는 다양한 질서와 복합적 균열을 다루는 현대 작곡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민감하면서도 무거운 대기의 흐름을 탁월한 감각으로 완성한 앨범이다.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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