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Aki Rissanen - Hyperreal (Edition, 2023)

 

핀란드 피아노/키보드 연주자 겸 작곡가 Aki Rissanen의 새로운 트리오 프로젝트 Hyperreal의 앨범.

 

아키의 음악에 매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재즈가 지닌 언어와 그 표현의 확장성을 그보다 더 극적으로 활용하는 뮤지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양식의 피아노 트리오 작업에서도 오소독스한 접근에서부터 아방가르드에 이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며, 공간의 자율성과 집합적 합의를 아우르는 유연함으로 연출하는 다이내믹 속에 노르딕 특유의 감성까지 더한 독특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솔로 작업에서는, 단순히 주변 여러 장르와의 다양한 연관과 경계의 확장을 다루는 것을 넘어,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접근을 통해 그 표현을 구체화하는 치밀함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트럼펫 Verneri Pohjola와 드럼 Robert Ikiz와 함께 녹음한 결과를 담고 있어, 기존 트리오와는 다른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키와 베르네리는 오랜 기간 듀오 무대를 펼쳤으며, Nils Landgren’s Funk Unit의 구성원이기도 한 로베르트 또한 피아니스트와 Ikizaki라는 유닛 활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트리오는 오랜 동료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친숙함과, 이전과는 다른 조합을 통해 연출할 수 있는 새로움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며, 음악적인 내용에서도 기존의 익숙한 양식적 요소를 과감한 방식으로 서로 대면하게 하여 표현의 확장을 완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교차는, 어쩌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가상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아키가 자신의 음악을 통해 풀어가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며, 이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자 새로운 트리오의 이름인 ‘하이퍼리얼’이라는 단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것들은 이미 기존의 익숙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키의 일렉트로닉이나 전자 음향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적극 활용했던 요소이기도 하고, 실제 이번 앨범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운드의 소스만 보면, 이전 솔로 작업인 Divided Horizon (2021)에 비해 오히려 간결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북유럽 특유의 감성적인 냉기와 활기찬 냉소를 동시에 품은 듯한 베르네리의 프레이즈 또한 아이코닉하며, 이국적인 특색과 레트로한 표현을 동시에 품은 로베르트의 화려한 폴로포닉 리듬 역시 기존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와 같은 익숙한 요소의 조합이 완성하는 표현은 새로운 음악적 사고를 지향하는 듯하며,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버추얼한 음향 공간의 활용이 아닐까 싶다. 입체적인 위상과 넓은 공간으로 확산하는 리버브 등은, 이번 앨범에서 사용하고 있는 여러 사운드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있어, 하이퍼리얼이라는 앨범의 타이틀과도 잘 어울리는, 나름 신선한 경험을 제공한다.

 

다양한 특징을 지닌 사운드의 조합과 돌비 애트모스의 활용이 인상적인 특징을 이루긴 하지만, 트리오가 지닌 고유의 음악적 표현력은 앨범 전체를 압도하는 큰 에너지를 완성한다. 전자 악기를 통해 표현되는 사운드는 독특한 공간의 질감과 분위기를 연출하며, 때로는 사운드스케이프와 같은 역할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연주 악기로서도 충분한 활용성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합의의 공간에서 연출하는 독특한 몽환은 물론, 특징적인 사운드로 펼치는 임프로바이징은 집약적인 뉘앙스를 담아내기도 하고, 특히 트럼펫과의 대칭적 연관을 이루며 완성하는 다양한 관계는 개별 곡의 특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전자 음향은 베르네리와 로베르트는 물론 아키 자신의 키보드 연주에 대해서도 다양한 능동적 개입을 개방하는 장치로도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역동적 표현 속에서 서로 다른 캐릭터가 대비와 대면을 이루면서도 온전한 공간적 합의를 완성하는 대목은, 단순히 프로덕션의 힘만으로는 재현하기 힘든, 구성원들 상호 간의 긴밀한 내적 연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한 민첩한 반응은 물론 섬세한 작용 등이 더해지며, 연주의 특성은 물론 공간의 재현까지 훌륭하게 완성하고 있다.

 

앨범은 다양한 사운드를 활용해 서로의 에너지를 응집하는 연주에서부터, 섬세함을 바탕으로 내밀함을 축적하는 곡에 이르기까지, 앨범은 여러 스타일을 포괄하고 있어, 이번 트리오가 다루는 다면적 표현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함이 하이퍼리얼 특유의 질감과 분위기에 수렴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지닌 음악적 힘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익숙함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재현한, 오랜만에 음악의 쾌감을 경험하게 해 준 앨범이다.

 

 

20230714

 

 

 

 

related with Aki Rissan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