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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rild Andersen Group - Affirmation (ECM, 2022)

 

노르웨이 베이스 연주자 Arild Andersen이 이끄는 새로운 쿼텟 Arild Andersen Group의 앨범.

 

1945년생인 아릴드는 1960년대 초 기타리스트로 재즈 씬에 처음 데뷔했고, 이후 베이스 연주자로 자지를 바꾸면서 수많은 역사적인 세션과 기록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1970년부터 ECM의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당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녹음에 참여하는 한편, 유럽과 북미를 오고 가며 다수의 음악적 아이콘들과 협업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처럼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현실적 보편성과 더불어 새로운 지반 속에서 스스로를 포함한 주변의 음악을 갱신하기 위한 창의적 독창성을 동시에 지닌 뮤지션으로 기억하게 된다. 아릴드는 특히 젊은 당대의 새로운 음악적 창의를 대표하는 젊은 세대 뮤지션들과의 협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녹음은 AAG의 타이틀로 발매되었지만, 기존 Electra ‎(2005) 앨범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그 내용이나 형식에서도 전혀 다른 성격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업에는 색소폰 Marius Neset, 피아노 Helge Lien, 드럼 Håkon Mjåset Johansen 등이 참여하고 있어, 45년생 노장과 젊고 안정적인 85년생 뮤지션이 오늘날의 새로운 음악적 흐름을 대표하는 75년생 중진들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세대를 대표하는 헬게와 마리우스는 이미 자신들의 이름만으로도 독창성은 물론 독립적인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뮤지션들로, 이들이 아릴드의 이름으로 구성된 하나의 공간에서 앙상블을 완성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이와 같은 AAG의 멤버는 아릴드의 보편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포괄하는 현재의 예시로 봐도 무방할 만큼 각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기에는 각자의 음악적 특징을 어떻게 하나의 공간에 담아내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아릴드는 녹음을 위해 사전에 몇 편의 원고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결국 리코딩은 각자의 음악적 창의성에 의존한 프리 임프로바이징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AAG는 이전에 몇 차례의 공연과 연주를 함께 진행한 경험은 있지만,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방식이 아닌, 연주 전체를 온전한 즉흥적인 모티브의 전개에 의해 집단적인 창의를 통해 완성한 시도는, 이번 녹음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 계획도 없이 이루어진 연주는 23분과 14분, 두 편의 녹음으로 기록되었고, “Affirmation, Pts. I & II”로 각각 명명한 해당 녹음을 모티브의 변화에 따른 구분을 통해 모두 7개의 트랙으로 구분되어 이번 앨범이 수록된다. 여기에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Short Story”를 앨범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공간적 합의를 통해 완성한 연주의 예시까지 보여주게 된다.

 

구성원 각자에 주어진 공간적 자율성을 완전히 개방하고, 그 안에서 개별적 창의성을 유도하는 방식의 접근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연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멤버들이 보여주는 상호 인과성이다. 긴밀한 인터랙티브라는 표현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상대의 의도에 정교하게 안착하는 개별 라인의 기민함은 연주가 진행되는 전체 과정에서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도 새로운 모티브를 통한 개입과 반응 또한 능동적이고 즉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연주 자체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의 트렉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과정만 보더라도, 마무리를 하고 새로운 도입을 제안하는 방식에서 그 어떠한 역할이나 제한 등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면서도, 그 플로우나 연결이 전혀 인위적이지가 않아, 무척 자연스러우면서도 절묘하기까지 하다. 새로운 모티브의 도입에 따른 공간의 변화는 멤버들 상호 간의 복합적인 역학관계의 내밀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어, 전체 연주의 흐름은 밀도와 부피의 다양한 모습에서 감상의 흥미를 더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집단적 창의 과정에서도 구성원 각자의 유니크 한 기악적 표현은 물론 개인적인 특징까지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어, 개별 라인을 따라가며 연주를 듣는 것도 재미있다.

 

앨범은 마치 ECM 초기 시절, 아릴드가 함께 활동했던 당대의 뮤지션들과 진행했던 일련의 집단적 창의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여, 레이블의 오랜 팬 입장에서는 감격스럽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사전 합의를 바탕으로 완성한 연주를 마지막 트랙에 배치하여 서정적인 마무리를 보여주는 대목은, 마치 긴 여정 끝에 즐기는 휴식처럼 전해진다. 노장의 아릴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뮤지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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