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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David Kollar & Arve Henriksen - A Sense of Destiny (Hevhetia, 2022)

 

슬로바키아 기타리스트 David Kollar와 노르웨이 트럼펫 연주자 Arve Henriksen의 듀엣 앨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아마추어 경험을 통해 음악과 친숙한 생활을 보냈고, 이후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서의 발판을 다진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대 초 데뷔 이후 여러 유명 뮤지션들과의 협연을 포함한 10여 장의 개인 앨범을 선보이는 한편, 20편 가까운 영화 음악에도 기여함으로써, 연주와 작곡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을 이어가게 된다. 실험적인 모티브를 활용하여 진행되는 그의 연주와 곡은 현대의 즉흥적 창의와 구성적 합의를 연결하는 매력적인 방식으로 관심을 끌게 되며, 여기에 재즈 외의 민속, 클래식, 일렉트로닉 등 주변의 다양한 장르적 요소까지 유연하게 활용하여 유니크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럽 음악 씬에서의 독보적인 입지를 완성한 아르베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완성되는 임프로바이징을 통해 재즈를 비롯해 록, 민속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고전적인 오케스트라 및 실내악과의 협력을 포함한 폭넓은 콘텍스트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지금까지 자신의 작업 속에서도 많은 연주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새로운 공간적 창의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그중 아르베와의 인연은 Illusion of a Separate World (2018), Sculpting in Time (2019), Unexpected Isolation (2020) 등을 거치면서 이번 앨범까지 이어지게 된다. 기존의 앨범들에서는 하나의 일관된 음악적 맥락을 지속하기보다는, 여러 악기의 구성을 포함하는 장르적 복합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만큼 각각의 작업마다 고유한 특징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데이비드와 아르베가 보여줄 수 있는 음악적 합의의 다양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번 녹음에 대한 초안은 감염병 사태로부터 어느 정도 일상 회복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던 무렵인 2021년 말에 데이비드가 확진 판정을 받게 되고 열흘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격리 중 작성되었다고 한다. 원격에서의 합의를 통해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앨범은 기존의 다양한 사운드의 구성을 단순화하고, 간헐적으로 드러나던 복합적인 장르적 특성 또한 내면화하여, 비교적 균일한 정서적 질감을 밀도 있게 응집하는 방식으로 음악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넓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그리 많은 사운드와 요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둘이 만들어내는 밀도감은 깊이가 넘친다. 프레이즈 자체가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그 명료함이 연출하는 긴장은 듣는 이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조금은 실험적인 표현임에도 정서적인 균일함과 묘사적 섬세함을 동시에 내포하는 플로우를 구성하고 있어, 쉽게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기본적인 연주 악기인 기타와 트럼펫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열되며 일렉트로닉과 간단한 샘플링을 활용해 디테일을 완성하는 구성의 단순함과 더불어, 그 표현 역시 중의적인 의미를 함의하는 듯한 비교적 축약적인 프레이즈를 통해 깊이를 더하게 된다. 전자 음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요소로 다뤄지기보다는, 어쿠스틱 공간을 보완하는 사운드스케이프의 기능으로 활용되지만, 공간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라인의 의미를 보완 혹은 연장하는 듯한 역할도 수행하고 있어 긴밀한 상호 밀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렉트로닉이 완성하는 공간적인 분위기는 다분히 앰비언트적인 신비감을 연출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정적인 기타와 함축적인 트럼펫의 라인은 그 양식을 다분히 다면적인 영역으로 통합하고 있어, 장르적 경계의 묘한 균열을 포함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식의 복합성을 다루는 방식에서 다분히 데이비드 특유의 느낌이 전해지면서도, 에르베만의 사색적인 음색과 라인이 연출하는 분위기의 특성 또한 매력적으로 전달되고 있어, 온전한 의미에서의 합의를 보여주고 있다. 음향학적인 몽환으로 채워진 밀도 있는 공간감이 연출하는, 이미지너리 한 상상력의 자극이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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