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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Dominic Miller - Vagabond (ECM, 2023)

 

유럽에서 활동 중인 아르헨티나 기타리스트 Dominic Miller의 앨범.

 

개인적으로 나에게 도미니크는 마치 종교와도 같은 일상적 냉담이자 맹목과도 같다. 열혈 신도는 절대 아니면서도 일상 속에서 늘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마주하는 존재이며, 그가 무엇을 하든 그의 뜻이면 무조건 이해하고 보는 그런 뮤지션이다. 도미니크가 연주한 "Shape of My Heart”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일한 휴대폰 벨소리이자 아침 알람이었고, 오디오 시스템에 케이블 하나라도 바꾼 날이면 일종의 습관적인 의식처럼 가장 먼저 “David”를 듣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미니크의 팬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했으며, 수십 년 동안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음악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때문에 이번 앨범의 제목인 ‘방랑자’는 마치 그의 삶을 반영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타이틀은 팬데믹 전후 새롭게 정착한 프랑스 남부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며, “길고 고독한 산책” 중에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곡들을 이번 앨범에 수록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러한 분위기와 서정은 앨범 곳곳에 반영되어 있으며, 여러 개별 곡의 제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도미니크가 선보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시적인 표현이 유독 눈에 띄며, 때로는 사적 정서를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기도 하여, 풍부한 감성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러면서도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특유의 작법 또한 여전히 유효하여, 이번 앨범만의 고유한 잔잔한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각각의 작업마다 고유한 색을 부여하기 위해 매번 다른 편성으로 앨범을 완성해 온 도미니크의 이번 녹음에는 스웨덴 피아니스트 Jacob Karlzon과 이스라엘 드러머 Ziv Ravitz가 참여해 도미니크와 처음으로 팀을 이루었으며, 베이스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기타리스트와 함께 호흡을 맞춰온 벨기에 출신 Nicolas Fiszman이 함께하고 있다. 작곡을 완성한 후 뮤지션들과 프랑스 남부에 모여 3일 동안 리허설을 하며 곡의 구조와 멜로디를 익혔고, 이후 스튜디오에서 편곡을 중심으로 녹음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작업 진행 덕분인지, 이번 앨범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일체감은 무척 인상적이다. 테마를 구성하는 앙상블의 구조는 물론 이후 진행에서 균일하게 이어지는 톤은 안정적이면서, 적절한 긴장과 여유를 동시에 품은 독특한 밀도를 연출하고 있다. 일련의 형식적 규범이 이와 같은 안정적인 진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지만, 개별 공간에서 즉흥적 모티브에 의존한 진행에서는 유연하면서도 자율적인 표현을 개방하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단일한 감정선에 의존한 풍부한 뉘앙스의 표출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일체감은 완벽하고 정교한 음악적 합에 의존한 치밀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인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통합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완성하는 음악적 내러티브 또한 풍부한 뉘앙스 속에서도 단일한 톤을 지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과정에는 과잉이나 과장이 없으며, 간결하고 은유적이지만, 핵심을 요약하는 듯한 시적 표현을 보여주며, 그 어떤 가사 한 마디 없이도 마치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듯한 친밀함을 지니기도 한다.

 

공간을 가득 채우지는 않은, 다분히 여유롭고 때로는 관조적인 분위기도 느껴지기도 하지만,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적인 밀도만큼은 누구라도 쉽게 경험할 수 있을 듯싶다. 마치 일상의 보폭에 맞춰진 호흡은 듣는 이에게도 진솔하게 전해지고 있어, 그 걸음에 맞춰 함께 산책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일상 속에 늘 항상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매일 아침의 알람이, 특별함으로 충만한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 앨범이다. 30년의 세월이 지나 내가 도미니크의 팬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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