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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nrico Rava & Fred Hersch - The Song Is You (ECM, 2022)

 

이탈리아 트럼펫 및 플루겔호른 연주자 Enrico Rava와 미국 피아니스트 Fred Hersch의 듀엣 앨범.


호른과 피아노의 상호보완적인 음색으로 깊은 음악적 울림을 전했던 기존의 여러 중요한 성과 중에, 엔리코와 프레드의 이번 앨범도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 재즈 씬에서 두 사람이 지닌 상징성만으로도 이번 앨범은 큰 주목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녹음을 통해 지금까지의 음악적 삶이 반영된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은 물론, 자신들이 속한 재즈라는 거대한 담론을 대하는 뛰어난 통찰력을 동시에 녹여내고 있다. 


엔리코는 이탈리안이라는 시각에서 미국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던 음악적 격변을 자신의 언어로 수용하여 유러피언이라는 보편적 관점을 제안한 뮤지션으로, 그의 음악적 입지와 성과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ECM과의 50년 넘는 인연으로 대신 설명할 수 있다. 프레드는 1970년대 데뷔 초부터 시대를 상징하는 유명 뮤지션들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고, 이후 자신의 트리오를 포함한 여러 협연을 통해 표현의 폭을 넓히며, 재즈 피아노의 전통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새롭게 정의한 인물들 중 한 명이다. 특히 클래식의 영향을 반영한, 왼손과 오른손의 대위적인 즉흥을 제안하며 솔로 악기로서의 풍부한 앙상블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이러한 공간 표현의 특성을 활용해 여러 연주자들과의 듀엣 파트너로 인상 깊은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엔리코 또한 듀엣 연주는 무척 익숙한 방식인데, 그의 오랜 동료인 피아니스트 Stefano Bollani와의 연주가 대표적인 예이며, 이번에는 프레드와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선보이게 된다.


프레드의 입장에서는 이번 녹음이 첫 ECM 릴리즈이지만, 그의 오리지널 다수가 이미 레이블의 여러 녹음을 통해 자주 선보인 적이 있어, 어색하다거나 새롭다는 인상이 덜 한 것은 사실이다. 대신 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엔리코와 프레드가 선보이고 있는 레퍼토리에 있다. 엔리코의 “The Trial”이나 프레드의 “Child's Song”과 같은 자신들의 오리지널도 수록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Antônio Carlos Jobim, George Bassman, Jerome Kern, Thelonious Monk 등의 유명 넘버들을 연주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임프로바이징과 인터랙티브를 통해 완성한 “Improvisation”을 제외하면 사실상 재즈의 스탠더드로 분류할 수 있는 기존 곡들이다. 이미 익숙한 것을 우리에게 제안하는 대신, 이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포함한다는 점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이와 같은 선곡은 어느 정도 재즈라는 하나의 큰 흐름을 염두에 둔 듯한 인상이 강하며, 엔리코와 프레드의 해석을 통해 각자 사진들의 음악적 발자취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일치시키는 모습을 보는 듯하여 그 감동은 더할 나위 없이 크기만 하다.


앨범 전체 연주를 듣다 보면 곡에 대한 해석은 물론 듀오라는 공간의 활용 등 모든 면에서 전통과 개인의 경계면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프레드는 특유의 추상을 통해 마치 곡의 핵심만을 남긴 채 그 빈 공간을 자신의 해석으로 채우는 듯한 인상적인 재구성을 보여주며, 엔리코 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원곡의 본질을 요약하고 이로부터 표현을 확장하는 등, 두 사람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들만의 고유한 접근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순간에도 이들은 단 한순간도 곡의 오리지널리티에서 벗어나지 않는 최적의 거리를 취하고 있는데, 이 과정은 단순한 해석의 유연성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절제된 창의로 표출되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다. 또한 둘 사이의 공간 활용은 통상적인 규범에서 출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진행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가변성은 전통적인 양식으로 특정하기 쉽지 않은 유연한 인터랙티브를 포함하고 있다. 단순한 전후 혹은 좌우의 대칭이나 대비가 아닌 유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서로의 공간에 대해 자연스럽게 개입하거나 그 경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합의에 의해 완성된 균일한 템포와 일련의 분위기를 지속하면서도, 그 내부의 역동적인 관계를 차분한 표현으로 담아내는 방식이라, 듣는 입장에서는 편안함과 동시에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순간들의 연속으로 기억된다. 프레드의 솔로로 이루어진 “Round Midnight”에서 조차 엔리코의 존재가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의 인간적인 호흡은 인상적이다.


엔리코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육체적인 나이가 있고, 프레드에게는 삶을 모든 순간 동안 동행해야 하는 질병이 존재하기에, 이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프레이즈와 타건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재즈라는 장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창의적 표현을 담아내고 있으며, 서정과 역동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추석에 맞춰 도착한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앨범이다.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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