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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ollie Kenniff - We All Have Places That We Miss (Western Vinyl, 2023)

 

캐나다계 미국 전자 음악가이자 연주자 겸 보컬 Hollie Kenniff의 앨범.

 

홀리의 남편인 Keith Kenniff는 Helios와 Goldmund 등의 이름으로 활동 중인 뮤지션이며, 현재 아내와 레이블을 꾸려가고 있다. 이 둘은 2000년대 말부터 듀오 프로젝트 Mint Julep를 통해 인디-팝 계열의 전자 음악 활동을 최근까지 선보이고 있으며, Meadows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나 이름으로 발표한 작업은 각자의 음악적 취향과 정서를 반영한, 개별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둘 다 일렉트로닉이라는 공통의 작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키스는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에 가깝다면, 홀리는 앰비언트를 바탕으로 포스트-록이나 드림-팝 같은 분위기를 녹여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와 같은 형식적 차이와 별개로, 홀리는 개인 내면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전달하는 듯한 진솔함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분히 개인의 경험이나 기억과 관련된 것이며, 사적 영역에서의 감정과 정서를 은유적으로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현실과 맞닿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큰 설득력을 지닌다. 감염병 사태로 인한 사적 고립, 개인 공간과 자연의 관계, 기후 변화로 지워진 우리의 일상 등이 홀리의 경험이나 기억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첫 솔로 작 The Gathering Dawn (2019)도 그러했고, 뒤이어 발표한 The Quiet Drift (2021)에서도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사적 영역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기 위한 사고의 흔적을 담담한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그리운 장소가 있다”라는 타이틀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이번 앨범에서 홀리는 어린 시절 중요한 추억을 간직한 장소의 소멸과 애도를 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할아버지의 흔적이 묻어 있던 공간이 소실되었고, 그사이 홀리는 만성 불면증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때 홀리는 “깨어 있는 것과 잠자는 것, 기억과 역사, 심지어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대한 의문과 생각을 연결해 가며 이번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진지함이, 지금까지 홀리의 모든 작업이 그러했듯이, 음악을 통해 어둡게 굴절되거나 무겁게 짓눌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홀리가 연주하는 신서사이저, 기타, 베이스는 물론 자신의 목소리조차, 모두 밝은 빛을 투과하는 듯한 투명함을 지니고 있으며, 3개의 트랙에 골드문트의 이름으로 참여한 남편의 피아노 또한 특유의 일상적 톤에 더해진, 온기를 품은 듯한 온화한 서정을 담아내고 있다.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을 담고 있으면서도, 음악은 기타, 베이스, 보이스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신서사이저는 주변의 공간을 정리하거나 하모닉스를 연출하는 등의 제한적인 활용을 보여준다. 기악적 특징은 복합적인 레이어링을 통해,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적 확장을 이루기도 하고, 다른 사운드와의 중첩을 이루며 풍부한 뉘앙스로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각각의 사운드는 마치 고유한 기능적 역할을 통해 공간에 투영되고 있어, 마치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느낌을 줄 만큼, 서로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으며, 곡의 흐름 속에서 기능을 구체화하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모든 구성이나 진행에서 각 사운드의 고유한 특징은 큰 변화 없이 균일한 지속성을 유지하는데, 톤과 벨로시티 또한 나름의 일관된 플로우를 보여준다. 대신 각각 사운드가 이루는 중첩을 통해 연출하는 다양한 공간의 밀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하모닉스 등은 하나의 유연한 흐름을 이어가며 개별 곡의 고유한 정서와 분위기를 완성한다. 이러한 사운드의 조합은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 개입하는 다양한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반영한 듯한 느낌으로 전달되며, 때로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정서를 미니멀한 멜로디로 담아내고 있어, 이 모든 과정은 설득이 아닌 공감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 홀리는 ‘장소’에 대한 기억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녀의 음악이 담고 있는 정서와 사고는 어느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보편적 경험처럼 다가온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전작을 처음 들었을 당시 느꼈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흔들림 때문에 그 감상을 무척 건조하게 다뤘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2021년 가장 기억에 남는 앨범 중 하나였으며, 이번 작업 또한 오래도록 반복해서 듣고 싶은 작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부모님을 잃었고, 기억과 흔적을 간직한 장소도 이미 사라졌다. 감염병 사태 이후 우리는 일상을 향해가고 있지만, 우리가 되돌아갈 수 있는 장소는 분명 예전의 그곳은 아닐 것이다.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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