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색소폰 연주자 Mete Erker와 피아니스트 Jeroen Van Vliet의 듀엣 앨범. 오랫동안 메테와 제로엔 각자가 축적한 음악적 경력 중에는 서로 함께 공유한 시간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 둘은 1980년대 말 Erker Kwartet을 통해 처음 만났다고 전해지니, 대충 그 기간만 따져도 30여 년은 충분히 넘는다. 그 시간 중에는 다른 뮤지션들을 위해 함께 세션에 참여한 녹음은 물론, Estafest 쿼텟에서의 7-8년 가까운 경력을 포함, 둘이 함께 조직한 프로젝트도 다수 존재한다. 메테와 제로엔의 듀엣 작업은 비주얼 아티스트 Mattie Schilders의 제안으로 처음 이루어지는데, Unseen Land (2015)는 화가의 작품에 대한 두 뮤지션의 음악적 반응을 담은 일종의 전시 공연을 위한 기록이었지만, 듀엣이라는 포맷이 지닌 공간적 합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후 Pluis (2019)에서는 라이브의 형식을 통해 인터랙티브 한 창의를 실현하게 된다. 앨범 발매 이후 진행된 일련의 공연은 둘의 상호의존적 파트너십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는 3년 만에 선보인 이번 앨범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이번 앨범이 전작과 그 이후의 공연을 통해 축적한 경험을 반영한 결과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려한 기교 뒤에 숨겨진 내면의 깊은 성찰을 드러내기도 하고, 풍부한 정서적 표현을 통해 깊은 공감을 자극하는 연주들이 가득하다. 작곡과 즉흥의 관계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인과성은 물론, 두 뮤지션의 개별 및 공통 공간에 대한 합의의 유연성은, 메테와 제로엔이 지금까지 이룬 음악적 신뢰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트랙과 트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부 연주는, 처음부터 개별 곡으로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음을 의미하는데,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가 확장되며 완성된 표현을 새로운 테마로 연결해 완성하는 과정에서 작곡과 즉흥이 통합을 이루는 절묘한 음악적 플로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도입과 테마로 시작하는 통상적 진행에서도 이후에 이어질 개방 및 솔로 공간에 대한 함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와 같은 주제가 즉흥의 모티브를 염두에 둔 작곡의 결과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피아노는 왼손과 오른손의 경계와 역할을 확정하지 않는 유연한 주법으로 색소폰의 표현이 다면화 할 수 있는 공간을 개방하고, 메테가 솔로 영역에서 퍼커시브 한 주법을 통해 새로운 모티브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제로엔은 이미지너리 한 프레이즈로 공간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등, 상호 의존적인 연주는 앨범 전편에 걸쳐 분명한 특징으로 드러난다. 작곡과 즉흥, 그리고 연주 그 자체의 절묘함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를 통해 담다 내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감정이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공감을 염두에 둔 연주를 완성하기 위한 작업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서로에 대해 진솔한 음악적 표현이 청자에게는 깊은 시적 울림으로 전해지는 앨범이다.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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