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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Nils Frahm - Music for Animals (LEITER Verlag, 2022)

 

독일 현대 작곡가 겸 연주자 Nils Frahm의 앨범.


닐스의 곡과 연주는 흔히들 말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고전 음악과 작곡의 현대적 관점에서 그의 작업을 바라볼 때 더 많은 시사점을 얻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적인 기악적 특성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고전적인 엄밀함을 벗어나 구성과 형식의 새로운 접근을 제안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혁신의 측면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는 기존 클래식이 축적한 다양한 성과를 반영하기도 하여, 복합적인 내면을 이루는 다면성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닐스는 Juno-60이나 로드와 같은 아날로그 신서사이저뿐만 아니라 Una Corda와 같은 피아노를 활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그니쳐 사운드를 완성하고 있으며, 그 외의 다양한 장비와 악기를 조합하면서도 단순한 시퀀싱이나 샘플링이 아닌 연주 그 자체와 의도를 반영한 엔벨로프의 특성을 드러내는, 나름의 음악적 엄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닐스의 음악적 체계화는 자신의 동베를린 LEITER Studio 스튜디오 완성 이후 보다 집약적인 방식으로 선보이게 되는데, All Melody (2018)와 All Encores (2019)은 뮤지션의 새로운 음향적 실험은 물론 기악적 접근까지 포괄적으로 통합하게 되는 중요한 성과를 함축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세 번째 정규 녹음이며, 자신의 레이블 LEITER Verlag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발매하는 신작이기도 하다. ‘동물을 위한 음악’이라는 타이틀은 물론 개별 곡 제목을 통해 다분히 묘사적 특징을 강조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닐스의 설명에 의하면 특별한 음악적 목적이나 용도를 지칭하지 않는, 단순한 개념적 활용과 관습적 표현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번 앨범의 큰 특징은 피아노를 완전히 배제한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 닐스는 감염병에 따른 봉쇄로 인해 연주 과정에서 조율을 담당할 기술자를 부를 수 없었다는 다소 허망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어, 그가 사운드의 디테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보여주는지 우회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신 닐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있는 글라스 하모니카, 펌프 오르간, 멜로트론 등을 비롯해 레트로 미니무그와 Juno-60 등의 아날로그 신서사이저 등을 이용한 연주를 들려주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리버브와 딜레이 등과 같은 이펙터를 활용해 기악적 표현을 확장하거나 디테일을 구체화하기도 하는데, 인상적인 것은 이와 같은 효과들이 하나의 기악적 역할을 담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리버브 챔버를 통해 연출된 사운드를 룸 어쿠스틱의 특성을 반영하여 그 자체를 기악적 음향의 일부로 활용하는가 하면, 테이프 혹은 플레이트 딜레이를 믹싱하여 연주 악기와 같은 효과를 완성하는 등, 다양한 순간에서 닐스의 섬세한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특징 중 하나는 긴 러닝타임이다. 10개의 트랙 중 가장 짧은 것이 7:25이며 20분이 넘어가는 곡이 4개이고, 나머지 또한 13-18분에 재생 시간을 보여주고 있어, 전체 앨범 길이는 3시간 7분에 달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곡의 길이가 아니라 그 구조인데, 특정한 음악적 구성을 통해 빌드-업을 완성하거나 내러티브를 이용해 진행을 이어가는 방식이 아닌, 무척 간결하면서도 집약적이고 상징적인 반복을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운 엔벨로프의 변화에 의해 순환을 이어가는 루프와, 그 주변을 둘러싼 복합적인 효과와 섬세한 음향의 레이어링을 통해 긴 플로우를 지속하게 된다. 이는 마치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마치 하나의 대상이나 현상에 서서히 다가가 긴 시간 관찰을 이어가고 마침내 서서히 멀어져 가는 듯한 관조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닐스는 이를 무수히 반복적인 물줄기를 떨어뜨리면서도 그 어느 한순간 이전과 같은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 폭포에 비유를 한다. 앞에서 이번 앨범은 그 제목이 개별 타이틀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묘사적 특징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자세히 듣다 보면 1/900초 단위로 움직임을 세분화하여 그 동적 표정을 담아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대상이 우리에게 다르게 비치는 모습을 음악적 흐름으로 포착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등, 디스크립티브 한 성격을 완전히 배제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와 같은 관조적인 음악적 흐름이, 듣는 이에게 평온한 명상적 휴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부풀리지도 않고,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 다른 무엇을 과장하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시선을 통해 온전한 평온을 보여주려 했다는 점은,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웅장하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고요하지만 역동하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빼고도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올해 최고의 앰비언트 앨범 중 하나로 손꼽고 싶다.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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