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 Lukas Boysen - Clarion (Erased Tapes, 2022)
독일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Ben Lukas Boysen의 미니 앨범. 벤의 음악 여정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고, 그 때문에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될 앨범이 Mirage (2020)가 아닐까 싶은데, 기존 피아노를 중심에 둔 작곡과 연주에서 벗어나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표현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스타일의 변신은 물론 장르적으로도 새로운 접근을 선보였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후 선보인 Siren Songs (2021)는 이전 작업의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게임 OST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독특한 분위기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마치 다크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을 지향하는 듯한 모습에서 또 다른 분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EP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변화의 계기는 여전히 2020년의 작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듯하다. 앨범의 제목이자 타이틀 곡인 첫 번째 트랙 “Clarion”은 Mirage에 수록되었던 원곡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리믹스 버전으로 선보인 세 개의 곡 또한 해당 앨범의 연주를 오리지널로 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는 “Lux”와 “Plexus”와 같이 새롭게 선보이는 곡을 포함하고 있는데, 더욱 정교해진 사운드 큐레이팅과 섬세한 시퀀싱을 활용한 다양한 패턴의 감각적인 공간 구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2년 전에 선보인 작업의 연속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표현을 구체화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교해진 사운드의 구성과 연출만큼 그 표현은 더욱 과감해졌고, 서로 다른 음악적 모티브를 자연스럽고 명료하게 연결하는 방식 또한 세련된 모습이라, 그 자체로 하나의 강한 내러티브의 힘을 발산하고 있다. 이처럼 구체화된 벤의 표현 양식만큼이나 이번 EP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리믹스 트랙들이다. 이미 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생각되었던 Janus Rasmussen와 Ólafur Arnalds의 전설적인 듀오 프로젝트 Kiasmos는 타이틀 곡인 “Clarion”를 활력 넘치는 비트 플로우와 몽환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고, Hyperdub 프로듀서 Foodman은 이전 작업에 수록되었던 “Medela”의 섬세한 모티브를 보다 공격적이고 과감한 양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포스트-록 그룹 Mogwai는 역시 기존 곡인 “Love”를 자신들의 고유한 장르적 공간 속에서 재구성하는 등, 오리지널과는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음악적 감각과 표현을 활용해 리믹스를 수행하고 있다. 6개의 트랙과 30여 분 남짓한 짧은 길이의 앨범이지만, 이처럼 이번 EP에는 풀타임 리코딩 못지않은 많은 흥미로운 작업을 포함하고 있어, 저렴한 가격에 속이 꽉 찬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이다.
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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