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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rland Cooper & Scottish Ensemble - Folded Landscapes (Mercury KX, 2023)

 

스코틀랜드 작곡가 Erland Cooper와 Scottish Ensemble의 협연 앨범.

 

지금까지 엘란드가 보여준 음악적 변화와 그 궤적은 마침내 모던 클래시컬과 현대 작곡의 흐름 속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러 장르 간의 모호한 경계는 해소되었으며, 클래식과 일렉트로닉의 접합점에서 엘란드가 취하는 태도 또한 분명한 자기 언어에 기반하고 있다. 이제 그의 음악은 여러 장르적 유형의 경험을 바탕에 둔 복합성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정교하게 가다듬고, 이에 근거해 그 형식의 다양성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향한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도 엘란드는 주변 풍경 혹은 환경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그 안에 자신의 사적 정서를 담아내는 고유한 표현을 지속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섬세함과 진솔함은 여전히 유효한 그만의 특징을 이루기도 한다. 다만 이번 앨범의 경우 자신의 신념을 담아 보다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보여주고 있는데, ‘접힌 풍경’이라는 은유적인 타이틀은 물론 녹아내리는 북극의 빙하와 번지는 불을 함께 담은 커버 아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엘란드는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를 이번 작업의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대신 그 표현이 강한 주장보다는 절실한 호소에 가깝고, 앙상블과의 협연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활동 중인 게스트들의 참여를 담고 있어, 마치 음악을 통한 연대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엘란드의 피아노와 일렉트로닉 및 필드 리코딩은 물론, 스코틀랜드 앙상블의 현악, 하프시코드 등과 함께 시인 Simon Armitage, 소프라노 Josephine Stephenson, 기타 Leo Abrahams, 바이올린 Daniel Pioro 등이 함께하고 있으며, 환경 보호 활동가와 예술가 등을 포함한 여러 인물들의 목소리도 작품에 등장한다. 1부와 2부, 각각 7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앨범의 각 트랙은 기후 변화와 관련한 다양한 현상을 묘사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마치 빙하와 대지가 스스로 발언하는 듯한 표현에 인간의 감정을 대입하여 고스란히 전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1부와 2부는 같은 테마를 공유하면서도 곡의 구성과 진행에서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어, 둘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엘란드의 작곡은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희생해야 하는 자연의 일부처럼 작성되어 있지만, 관조적이지도 않고 격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점에 수렴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미니멀한 테마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묘사적 특징을 강화하는가 하면, 악기의 텍스쳐나 구성의 흐름 혹은 하모니의 구조 등을 통해 그 섬세한 움직임을 구체화한다. 고전적인 양식을 차용하여 구성과 하모니를 완성한 점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익숙한 표현을 활용한 직설적 묘사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불필요한 음악적 기교나 수사를 배제함으로써 진솔한 의미 전달을 위한 접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리의 기호를 사용해 구성의 상징과 하모니의 은유를 통한 음악적 묘사를 완성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목소리가 개입하여 메시지의 선명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필드 리코딩을 이용해 당면한 위기의 현실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환경의 재앙을 알리는 다급한 뉴스의 보도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산불과 빙하가 무너지는 장면을 포함하는 샘플링과 필드 리코딩을 활용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환경 재앙에 스스로의 책임과 결의를 담은 각계각층의 목소리도 수록하고 있다. 일상적인 스튜디오 녹음 외에도 추운 영하의 환경에서 녹음을 진행했고, 가장 무더운 여름날 마스터 테이프에 화상을 입히는 등, 음악에 기후의 변화를 담아내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진다.

 

재앙을 다루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고백하고 있으며, 변화에 대한 열망 속에 희망을 담고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진솔한 언어로 예술적 책임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청자에게는 듣는 것만으로도 그 뜻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 대한 지구의 몫과 수익은 Brian Eno가 제안한 EarthPercent에 기부되며,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단체에 재분배된다.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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