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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rland Cooper - Music for Growing Flowers (Mercury KX, 2022)

 

영국에서 활동 중인 스코틀랜드 작곡가 겸 프로듀서 Erland Cooper의 앨범.

 

엘란드는 지금까지 여러 유형의 음악적 작업을 선보이다, 비교적 최근 들어 클래식과 일렉트로닉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고찰하며 자신의 언어를 완성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다. 흔히들 말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경향적 특성으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탐색한 여러 접근 방식은 현재의 엘란드를 유니크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 듯하다. 특히 자연과 환경을 소박한 언어로 표현하는 그의 음악은, 어린 시절 성장의 배경이 되었던 스코틀랜드의 군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특정한 주의나 주장을 담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풍경 그 자체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기억이나 감정 등과 같은 사적인 경험을 반영하고 있어, 엘란드만의 고유한 정체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엘란드가 선보였던 음악의 유형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자연스러운 전달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형식적인 요약을 이루는 듯한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정돈된 언어와 표현은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엘란드의 활동은 음악에만 한정을 이루지 않고 연극, 영화, 미술과 같은 시각 예술은 물론, 작가와 시인 등과도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 앨범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완성작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올해로 즉위 70주년을 맞이한 엘리자베스 2세의 플래티넘 주빌리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런던 타워는 지난 6월 주변에 2천만 개의 씨앗을 뿌려 오는 9월까지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Superbloom이라는 제목의 설치 예술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앨범의 첫 번째 부분은 해당 행사 개최에 맞춰 지난 6월 선공개되었고, 최근 나머지 후반부를 더해 완결된 작업 형식으로 발표한 것이 이번 작업이다. 이번 작업에는 첼로 Clare O'Connell, 바이올린 Daniel Pioro, 하프 Olivia Jageurs, 보이스 Josephine Stephenson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엘란드는 피아노와 일렉트로닉 및 필드 리코딩을 이용해 앨범을 완성하고 있다.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부로 완성된 앨범이지만, 엘란드는 런던 타워 주변에 만개하는 다양한 꽃들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차용하여, 음악 자체는 엘란드 특유의 소박함과 묘사적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앨범 전체에 핵심을 이루는 2개의 짧은 테마를 활용하여 다양한 편성과 여러 바리에이션을 통해,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정원의 모습을 쳥각적 표현으로 그려내는 듯한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진행되는 자연의 변화에 음악의 속도를 맞추기라도 하듯, 전체적으로 느리면서도 균일한 템포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고, 자연의 세밀한 움직임을 반영하여 변주와 편성의 조직 또한 트랙의 구분 없이 자연스러운 선형적인 플로우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앞서 공개한 첫 번째 파트를 이루는 4개의 트랙은 실내악적인 편성에 주안점을 두고 개별 악기의 연주를 순차적으로 전면에 부각하며, 편곡을 통한 다양한 변화를 이어간다면, 이번에 공개한 4개의 곡들은 독주에 가까운 공간 활용을 통해 연주를 완성한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후반 트랙들은 앙상블 구성에서의 개별 라인을 추출해 별로의 프로세싱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인상을 줄 만큼 간결한 구성을 이루고 있지만, 그 자체의 소박한 표현이 주는 매력은 앨범 전체의 흐름과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앨범이 모티브로 하는 성격에 따라 전통적인 연주 악기의 특징을 활용한 편성을 보여주며, 전체적인 톤이나 텍스처 또한 나름의 균일함을 보여주고 있어, 그 분위기 또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한다. 일렉트로닉의 활용은 공간적인 배경을 이루거나 온화한 공기감을 묘사하는 듯한 방식의 차분한 개입을 이루는데, 연주 악기들의 텍스쳐와 대비나 대조를 이루는 방식이 아닌, 그 주변의 섬세한 배음을 완성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안착을 보여준다. 때문에 일렉트로닉의 활용은 앙상블보다는 개별 악기의 솔로가 부각된 후반 부분에서 세밀하게 드러나며, 그 순간조차도 전경을 침해하지 않는 차분한 배경의 이미지에 그 역할을 한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필드 리코딩 또한 앨범의 모티브에 걸맞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활용하고 있는데, 자세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될 정도로, 우연적인 개입을 가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섬세한 배려를 통해 완성한 음악은 다분히 시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시각적이기도 하여, 소박하고 차분한 표현과 달리 풍부한 정서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어 상당히 매력적이다.

 

핵심을 이루는 2개의 테마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며 일련의 정서적 플로우를 이어가고 있어, 한편에서는 영화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음악으로 그려낸 소박한 풍경화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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