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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Jeremiah Fraites & Taylor Deupree - Northern: Redux (Mercury KX, 2023)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Jeremiah Fraites와 전자음악가 Taylor Deupree의 협업 앨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제레미아는 2001년 형의 사망 이후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형의 친구인 Wesley Schultz와 함께 연주를 시작하며 The Lumineers를 결성했고, 그 명맥은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랜 기간 준비했던 피아노 솔로 작업을 최근에 발매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음악적 스타일에 담긴 풍부한 정서적 반영은 물론, 인상적인 톤 사운드로 새롭게 주목받기도 한다. 12K 레이블의 설립자이자 엔지니어이며 사진 및 디자인 분야의 예술가이기도 한 테일러는 1990년대 말부터, 주류 전자음악의 변방에서, 마치 소리로 고독을 탐구하는 듯한 일련의 작품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자연 음향과 합성 사운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면서 일상의 감정과 세상과의 괴리를 침묵에 가까운 음악에 담아내는 인상적인 미적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을 갖고 있는 두 뮤지션이 완성한 공동 작업이라는 점만으로도 이번 앨범은 많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번 공동 작업은 테일러의 대표작 중 하나인 Northern (2006)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장르적 양식에 입각한 일종의 재구성 작업이다. 처음에는 제레미아에게 커버 작업을 의뢰했지만 결국에는 공동 작업으로 발전했고, 피아노 레이어를 더하는 단순한 방식이 아닌, 기존 트랙의 진행과 구조에 대한 리뉴얼도 포함하는, 새로운 창작 과정을 거쳐 이번 앨범을 완성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작업에 흔히 사용하는 remix, reworks, reconstruction 등의 용어 대신, redux라는 생소한 프로그래밍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전 작업의 객체를 변경하는 대신 새로운 객체를 대상화하여 불변성을 지속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앨범은 이전 작업의 곡 구성 및 순서 등을 고스란히 가져왔고, 고립된 시골 환경 속에서의 묘사적 표현을 담은 상징적인 요소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원작에 담긴 정서적 감정을 피아노를 활용한 접근 속에서 새롭게 재현하고 있다. 미니멀한 앰비언스 속에서 일상/환경과 정서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게 하면서도 강한 몰입을 유도하는 테일러 특유의 음악적 표현을 담고 있지만, 사운드의 구성에서는 세밀함과 복합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조합 또한 유기적이다. 고요하고 느린 시간의 감각을 묘사한 듯한 오실레이션의 미묘한 움직임은 물론, 주변의 소소한 변화를 리버브와 복합적인 효과를 통해 표현하는 세밀함은, 고유의 묵시적인 정적 속에 수렴하면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때문에 이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테일러 본인이라고 해도, 생각만큼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제레미아와 함께 완성한 이번 리덕스 작업은, 단순한 음악적 시너지를 넘어서며, 재구성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원작과는 느낌의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기존 작업이 지닌 고유한 특징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어, 이번 앨범만의 창의성과 이전과의 연속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피아노의 리버브가 공간 속에서 확산하는 것만으로도 음악은 전혀 새로운 뉘앙스를 전달하는데, 고립감 속에서 펼쳐지던 기존의 공기감은 연주 악기의 포근한 정서적 배음이 더해지며 조금은 더 온화한 위안처럼 공간을 연출한다. 멜로디보다는 코드 보이싱과 플로우를 중심으로 하는 피아노 라인은, 원곡의 미니멀한 구성과 형식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접근처럼 보이며, 악기의 주변적인 기악적 사운드를 전자 음향과의 연관 속에서 섬세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기적인 사운드의 중첩은 원곡의 여백에 새로운 덧칠을 한다는 인상보다는, 그 이면에 감춰진 미묘한 정서를 연주로 복원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만큼 기존 요소들과 피아노가 이루는 음악적 합은, 처음부터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곡을 쓴 것처럼, 안정적이면서도 온전한 조화를 완성한다.

 

원곡에 존재하는 다양한 텍스쳐와 세추레이션까지 섬세하게 재현하며, 그 의미와 내용에 충실한 반영을 보여주면서도, 피아노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공간 안에서 전자 음향을 새롭게 배열하거나 튜닝한 섬세함도 포함하고 있어, 공동 작업으로서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이전 앨범이 익숙한 청자에게는 아련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이번 앨범만의 새로운 청각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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