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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eith Jarrett - Bordeaux Concert (ECM, 2022)

 

미국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Keith Jarrett의 솔로 라이브 앨범.


키스 자렛이 2017년 건강상의 이유로 음악 활동을 중단한 이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의 음악 기록은 과거에 이루어진 공연 녹음이 대부분이며, 그 대상 또한 멀리는 1980년대에 이루어진 라이브를 비롯해, 1990년대의 트리오 실황, 2000년대의 솔로 등, 비교적 포괄적인 시대와 포맷은 물론 클래식을 포함하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나마 비교적 최근의 음악적 기록을 담고 있는 것이 Munich 2016 (2019) 및 Budapest Concert (2020)와 같은 앨범으로, 사실상 키스의 마지막 음악 활동에 해당하는 2016년의 유럽 투어에 관한 리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2016년 솔로 공연에 관한 세 번째 기록으로, 7월 6일 프랑스 Auditorium de l'Opéra National de Bordeaux의 현장을 수록하고 있다.


키스 자렛은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이면서도 그 성과와 음악적 영향력은 지역이나 장르의 제한과 무관하다. 흔히들 유러피언이라고 통칭하는 일련의 경향적 흐름에서 그의 연주와 음악은 중요한 성과의 일부로 평가되고 있으며, 바흐나 헨델 혹은 모차르트와 관련한 키스의 창의적인 해석은 정통 클래식 분야에서도 신선한 음악적 제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재즈 분야에만 한정하더라도 70년대 아메리칸 및 유러피언 쿼텟을 비롯해, 1980년대부터 시작한 스탠더드 트리오 활동은 키스의 활동에서 중요한 음악적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데, 특히 그가 만성피로증후군을 극복하고 복귀한 2000년대 이후에는 솔로를 비롯한 트리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활동과 더불어 솔로 콘서트는 키스 자렛의 음악적 창의를 집약하는 상징성을 지니기도 한다. 1970년 Miles Davis 밴드 시절 로드를 이용한 연주와 Facing You (1972)와 같은 몇 편의 스튜디오 독주 녹음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솔로 앨범은 라이브의 기록으로 양산된 것이다. 특히 키스는 1973년 이후부터 솔로 임프로바이징으로 이루어진 공연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브레멘과 로젠의 기록을 담은 Solo Concerts (1973)를 시작으로 일련의 앨범을 꾸준히 선보이게 된다. 그중에는 Köln Concert (1975), Paris Concert (1990), La Scala (1997) 등과 같이, 10년 단위의 음악적 성과와 창의를 상징하는 키스의 대표작도 포함하고 있는데,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각기 다른 음악적 특징들로 인해 연주자의 다양한 면모를 관찰할 수 있는 텍스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만성피로증후군 진단 이후 홈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솔로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1999)를 계기로 2000년대 초부터 조금씩 활동을 재개한 키스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일련의 솔로 콘서트를 펼치게 되는데, 2011년 6월 서울 공연도 그중 하나로 기억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키스 자렛의 솔로 공연 역시 최소한의 모티브에 의존해 즉흥적 창의를 이용한 음악적 표현의 확장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에서는 기존에 자신이 선보인 솔로 임프로바이징의 다양한 양식을 체계화하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듯한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하나의 공연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무대를 통해 선택적으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어, 각각의 라이브마다 독창적인 창의를 담아내게 되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집약해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뮌헨과 부다페스트 라이브를 비롯한 2016년의 기록이다. 비슷한 시기의 녹음을 담고 있지만 앨범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담고 있으며, 그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음악적 영감과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번 앨범의 독특한 점은 키스의 솔로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시대의 특징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극단적으로 확장하여 왼손과 오른손의 고전적인 연관은 물론 스케일의 전통적인 규범조차 해체하는 실험적 표현에서부터, 찰나의 빛처럼 반짝이는 듯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완성하며 서정의 단면을 들어내는 심미적인 순간에 이르기까지, 13개의 트랙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는 재즈와 클래식을 비롯한 전통적인 주변 장르의 여러 요소를 비롯해, 몇몇 고전의 레퍼런스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곡은 모두 선명한 자기주장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곡의 성격에 맞게 주법 또한 유연하여, 클래식적인 엄밀함을 강조하는 일련의 준칙을 강조하는가 하면, 절묘한 싱커페이션이나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분할적인 연음의 글라이딩 등, 피아니스트 특유의 유니크한 표현도 온전한 음악적 총합을 이루고 있다. 임프로바이징에 의존하면서도 클래식의 고전적인 화성에 기반한 진행은 물론, 모달이나 팬타토닉 등의 재즈의 스케일을 이용한 연주를 비롯해, 이 모든 규범을 해체한 무조의 실험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곡의 성격에 따른 나름의 엄밀한 준칙을 간직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섬세한 사운드 또한 무척 인상적인데, 같은 코드에도 손가락마다 각기 다른 벨로시티의 강약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의 차이까지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건반이나 페달을 이용한 서스테인의 다른 느낌 또한 생생하게 전해지는 등, 마치 10개의 손가락마다 마이크를 설치한 듯한 세밀한 음향적 조율은, 감상을 더욱 몰입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피아니스트가 선보였던 다양한 솔로 라이브의 핵심을 요약하는 듯한 다양성을 포괄하면서도, 어느 곡 하나 즉흥적 몰입이나 심미적 완성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의 키스 자렛을 담고 있는 앨범이다. 건강 문제로 그의 음악적 발언이 오랜 침묵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스 자렛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오랜 시간 빛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아직 미공개로 남아 있는 로마 실황도 기다려 본다.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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