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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eith Jarrett - Carl Philipp Emanuel Bach (ECM, 2023)

 

미국 피아니스트 Keith Jarrett이 연주한 Carl Philipp Emanuel Bach의 “Württemberg Sonatas” 앨범.

 

키스의 새로운 녹음을 듣는다는 것은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다수의 미공개 리코딩의 존재는 그의 음악적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1971년부터 ECM과 협업을 해온 키스는 솔로에서 쿼텟에 이르는 다양한 포맷의 연주는 물론, 순수한 즉흥과 자신의 오리지널을 포함한 풍부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는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바흐, 헨델, 쇼스타코비치 등의 고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라이브와 녹음 중에는, 이 시기 키스의 클래식 연주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번 앨범은 1994년 자택 Cavelight Studio에서의 기록을 담고 있다.

 

키스의 클래식 연주는 재즈 뮤지션의 단순한 크로스오버가 아니었으며, 논란과 찬사를 동시에 유발하는, 고전에 대한 해석에 집중한다. 바르록이나 쇼스타코비치와 같이 현대 장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작품에 대한 해석에서는 비교적 관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반면, 바흐, 헨델,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의 경우 일련의 유형화된 해석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상황에서 상당히 엇갈린 평가가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탁월한 기교와 기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특유의 감성과 표현을 더한 유연한 해석은, 평소 키스가 보여준 음악적 재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고전에 대한 그만의 접근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 어떠한 이견도 존재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의 해석에 대한 호불호는 청자 개인의 취향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으며, 클래식 영역 내에서 키스가 지닌 차별성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C.P.E. 바흐의 대답함과 화려함은 상당 부분 키스의 캐릭터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긴장과 분방함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원곡의 특징을 생각한다면, 피아니스트에게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개방할 수도 있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이번 뷔르템베르크 소나타에 대해 키스는 기존 하프시코드 연주와는 다른 피아노 버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녹음한 것으로 전한다. 키스는 페달의 사용을 제한하여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각각의 음이 지닌 선명성을 부각하고, 화성의 투명성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원곡이 지닌 기교의 화려함과 과감한 변화는 정교하면서도 빠른 피아니스트의 타건을 통해 재현되는데, 그 모습이 여유롭다는 인상을 줄 만큼 안정적이다.

 

피아니스트는 고전이 지닌 음악적 특징을 뛰어난 기술적 기교로 재현하면서도, 유연성과 즉흥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자신만의 해석 가능성을 개방하여 풍부한 표현을 담아내고 있다. 이와 같은 연주는 원곡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연주자의 음악적 해석이 개입하는 순간에도 사적 영감의 표출 대신, 감정적 표현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때문에 각 악장은 고유한 템포와 벨로시티는 물론, 곡을 특정하는 기본적인 성격에 충실하며, 그 특징을 극적으로 부각하는 진행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하고 빠른 기교도 각 악장의 특징에 따른 각기 다른 뉘앙스를 명확히 하며, 느린 진행 속에서도 무게와 비중에 분명한 차이를 두는 섬세함을 지닌다. 여유 있고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그 안에 자신만의 템포와 다이내믹을 섬세하게 개입시켜 풍부한 해석의 공간을 개방하기도 하는데, 다분히 미묘하면서도 극적이고 때로는 모던한 텐션을 떠올리기까지 한다. 그만큼 해당 악장에는 고유의 특징은 물론 연주자의 감정적 뉘앙스까지 깊게 반영하고 있으며, 때문에 트랙이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변화의 폭은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이보다 더 과감한 해석도 다수 존재하여, 키스의 이번 연주에 대한 논란보다는, 오히려 피아니스트의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감정 표현에 더욱 주목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30여 년 전에 기록한 연주를 담고 있음에도,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안정적인 균형을 보여준 키스의 탁월함은, 당시에도 독창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던하다는 느낌이 든다. 키스 자렛이 왜 타임리스 레전드인지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앨범이다.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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