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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it Downes, Petter Eldh, James Maddren - Vermillion (ECM, 2022)

영국 재즈 피아니스트 Kit Downes, 독일에서 활동 중인 스웨덴 베이스 연주자 Petter Eldh, 영국 드러머 James Maddren의 트리오 앨범. 이번 녹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킷이 앨범 전체를 피아노 연주로 채웠다는 점으로, ECM 데뷔 이후 주로 오르간 연주를 통해 음악적 창의성은 물론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적 이미지를 선보였던 기존 작업과 비교한다면 이번 녹음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전작 Dreamlife of Debris (2019)에서 부분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 경험이 있고, ECM 이전에도 해당 악기를 이용한 작업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트리오라는 가장 기본적인 포맷으로 리코딩을 진행했다는 점은 흔치 않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트리오에 대학 시절부터 음악적 경험을 공유했던 제임스와, 오랜 기간 Django Bates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페테르가 참여했다는 점은, 킷이 트리오라는 형식을 통해 기존 자신의 언어와 표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사하는 라인-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녹음에 페테르는 작곡에서뿐만 아니라 연주의 공간의 능동적 활용 등을 통해 다양한 모티브와 영향력을 제공하며 진지한 음악적 합의에 크게 기여하기도 한다. 작곡에서 피아니스트인 킷이 중요한 화두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확실히 이번 앨범은 누구의 리드 작업이라는 느낌보다 세 명의 뮤지션들이 자율적 합의에 기반해 완성한 공동 창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만큼 이들은 트리오의 공간을 독특하게 구성했고, 자율적 창의와 직관적 합의에 기반을 둔 진행은 단순히 인터플레이라는 단어의 한계를 넘어선 유연성과 긴밀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각자의 자율성에 바탕을 둔 플로우는 그 진행의 형식과 전개를 예측하기 힘든 창의적 발상으로 가득하지만, 각각의 상대는 그 변화에 반응하는 동시에 자신의 라인을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공간과 트리오의 형상을 완성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조화와 균형에서도 완벽하며 동시에 무척 냉철한 역동성을 지닌다. 더욱더 흥미로운 점은 자칫 난해한 실험적 외형으로 전해질 수도 있는 이들의 연주가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우아한 서정을 전한다는 것이며, 이 점이 이번 트리오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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