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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ebastian Rochford & Kit Downes - A Short Diary (ECM, 2023)

 

영국 드럼 연주자 Sebastian Rochford와 피아니스트 Kit Downes의 앨범.

 

이번 앨범은 지난 2019년 세상을 떠난 시인 Gerard Rochford와 가족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고인이 남긴 10명의 자녀 중 한 명이 바로 세바스찬이다. 드러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이번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를 피아니스트 킷과 공유하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마지막 트랙에 있는 “Even Now I Think of Her”의 경우 아버지가 전화로 불러준 곡을 피아니스트에게 전달하고 현재의 연주로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앨범은 세바스찬의 첫 번째 ECM 타이틀이다. 그는 Andy Sheppard와의 인연으로 10여 년 동안 ECM에서 3장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으며, 10년 이상 음악적 동료로 지내온 킷과는 최근 Dreamlife of Debris (2019)에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이들이 보여준 추상적 표현과 실험적 양식과는 달리, 이번 앨범에서 정서의 깊이와 경건한 심경을 반영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상실에 관한] 짧은 일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8개의 곡은 저마다 슬픔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는 각 트랙의 제목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마치 정서적 표제를 다루는 듯한 진솔함과 명료함을 지니고 있다.

 

세바스찬의 작곡에 듀엣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전체 연주의 비중은 킷의 피아노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피아노는 특별한 해석이나 기교를 배제한 채 비교적 담담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는 마치 세바스찬으로 하여금 사적 표현을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온화한 음악적 팔레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모습은 세바스찬의 설계를 킷이 건축하면, 다시 드러머가 그 디테일을 완성하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상호 간의 친밀함을 전제로 하는 협업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와 같은 듀엣의 연주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은 그 누구도 과잉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깊이 있는 정서적 반향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음악의 분위기는 차분한 품위를 지니고 있으며, 듣는 이에게는 일상의 대화와 같은 톤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듯한 온화함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앨범에서 인상적으로 들렸던 것은 공간감 그 자체다. 흔히들 ECM의 작업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특유의 차가운 공기감 대신, 이번 녹음은 마치 일상적인 거리를 두고 연주를 듣는 듯한 온화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실제로 이번 작업은 세바스찬이 어린 시절을 보낸 가족의 집에서, 오래된 피아노와 함께 녹음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앨범은 공간이 전하는 독특한 정서와 분위기를 온전히 재현하고 있으며, 레이블 특유의 투명한 음색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담담한 연주가 전하는 진솔함을 더욱 부각한다. 이와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주는 서로의 창의적 반응이 맞물리며 하나의 소리로 응집하는 듯한 정교한 음악적 합의를 바탕에 두고 있어, 때로는 고전적인 실내악적 엄밀함이나 종교적 의식의 엄숙함이 떠올리기도 한다. 상실감과 슬픔을 다루는 음악은 물론, 풍요로운 화음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루어진 곡에서조차 정합적인 텐션을 부여하며 하나의 배음으로 완성한 소리처럼 들리도록 연주를 조율하고 있다. 때문에 피아노와 드럼 사이에서도 정교한 유니즌 프레이즈를 듣는 듯한 명료함을 포함하는가 하면, 킷의 솔로로 이루어진 순간에서조차 세바스찬의 호흡이 느껴지는 긴밀함을 경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절제와 규범 속에서도 드러머는 자신의 감정을 상기하는 듯한 독특한 리듬을 보여주는가 하면, 절묘한 깊이로 울리는 베이스 킥에 미묘한 뉘앙스를 담아내기도 한다.

 

앨범은 마치, 슬픔을 통제하고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사회와 제도에 의해 정의된 죽음과 애도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절대 사회화되지도 제도화되지 않는, 상실과 관련한 사적 영역에서의 균열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듯하다. 이에 대해 세바스찬은 “위안이 필요하여 사랑으로 만든 음향의 기억”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상실은 오직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 이에 대한 사적 기록은 ‘일기’에 해당한다.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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