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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oby - Ambient 23 (mobyambient, 2023)

 

Moby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미국 뮤지션 Richard Melville Hall의 앨범.

 

1965년생인 모비는 1980년대까지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 밴드에서 연주했고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전향한 이후 DJ와 프로듀서로 다작의 성과를 이룬 뮤지션으로 기록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주류의 경계에서 본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뮤지션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여러 활동명으로 발표한 작업들 또한 큰 호응과 반향을 일으키며 나름의 음악적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팝, 블루스, R&B, 록 등의 폭넓은 장르적 포용력을 지닌 뮤지션이며, 일렉트로닉 분야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작법을 통해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음악적 세계관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의 확고한 종교관과 동물권에 대한 신념은 때로 음악 외적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음반 외에 저술이나 요식업을 통해 이를 홍보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Moby Dick의 저자 Herman Melville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모비의 음악이 지닌 폭넓은 포용력과 다양한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댄스 플로어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경향적 특징 속에서 통상적인 사고와 평가가 이루어지는 탓에, 그의 음악에서 앰비언트라는 장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모비는 해당 분야에서도 Ambient (1993)를 비롯해 최근의 Long Ambients 1 & 2 (2016 & 2019) 등의 작업을 통해 나름의 기여를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작업은 그의 SNS를 통해 예고되기도 했는데, “이상하고 오래된 드럼 머신과 낡은 신서사이저만으로 대부분 만들었다”라고 밝히기도 했고, 이는 Martyn Ware, Brian Eno, Jean-Michel Jarre, Will Sergeant 등과 같은 “초기 앰비언트의 영웅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앨범의 타이틀은 다분히 30년 전 자신의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작명을 보여주기도 하며, 악기의 활용이나 중요한 작법과 스타일에서 당시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 존재하기도 하여, 1993년 작품에 대한 일종의 회고적 의미 또한 포함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번 앨범이 단순한 레트로 스타일의 재현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미묘한 텐션이 공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의 간극을 추상화하고 이를 모비의 음악적 언어로 개념화하여, 그 경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흐릿하게 무효화한 듯한 독특한 앰비언트의 형상을 선보이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때문에 이번 작업은 오늘날의 앰비언트의 통상적인 경향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올드 스쿨의 스타일을 직접 떠올릴만한 접점 또한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묘한 매력이다. 전체적인 플로우에서 전경이 차지하는 역할을 비중 있게 구성하는 반면, 그 배경은 마치 낮은 피사계 심도로 포커스-아웃된 듯한 흐릿한 존재감만을 남겨두고 있어, 특별히 애트모스페릭 하다거나 앰비언스를 구성하는 사운드 배드의 인상이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모비 자신의 작업을 추상화하여 몇 가지 핵심 개념만을 남겨두고, 소리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방향과 구조를 설계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순함과 명료함이다. 거대한 웨이브 폼이나 단순한 코드 진행으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구성은 일련의 반복적인 플로우 속에서 그 형상이 서서히 변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효과나 카운터 라인 등과 같은 요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기본 라인의 밀도와 텍스쳐를 정교하게 레이어링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피아노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곡에서도 개별 음가 하나하나의 사운드와 간결한 하모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에서도 여러 효과 또한 배경 공간이 아닌 각각의 사운드에서 파생하거나 가까운 주변에서 배회하는 듯한 밀접한 거리에서 연출하기도 한다. 피아노 곡에서도 멜로디보다는 소리 하나하나 혹은 그 조합에서 파생하는 음향학적 흔적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길게 이어지는 리버브의 테일 자체만으로도 공간의 깊이와 거리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은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매력적이다. 이처럼 테마를 이루는 미니멀한 기본 라인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듯한 공간은, 그 어떠한 꾸밈이나 부연 없이도 충분한 밀도와 깊이를 완성하고 있다. 복합적인 라인 구성을 지닌 곡들조차 복잡한 구조적 연관성을 바탕에 두는 대신 라이너 한 흐름 속에서 기능적으로 배치된 듯한 단순성을 전제로 하고 있어 모비의 독창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미니멀한 라인의 흐름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나름의 기승전결의 구성적 형식을 지니고 있어, 명상적 몰입 대신 회고적 반향이나 기억의 부유를 다루는 듯한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마치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일련의 반복적 규칙성을 채계화하여 곡으로 표현한 듯한 독특한 형상에서 음악가의 연륜을 느낄 수 있다. 새해 첫날, 우연히 받아 든 소중한 선물 같은 앨범이다.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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