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창의적인 기악 그룹 Portico Quartet의 앨범.
2000년대 중반 4인조로 출범한 PQ는 이후 몇 차례의 멤버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 Duncan Bellamy와 Jack Wyllie의 2인 체제로 그룹을 유지하고 있지만, 팀 이름이 지닌 음악적 상징성을 유지하기라도 하듯, 여전히 쿼텟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성원의 변화만큼이나 PQ의 음악적 콘텐츠 또한 진화를 거치며 자신들만의 유니크 함을 더욱 정교하게 완성하는 방향을 보이게 된다. 재즈에 민속적인 테마를 접목했던 초기의 음악은 이후 행 드럼 사운드를 활용하며 앰비언트적인 몽환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전자 음향과 그 효과의 공간을 확대하면서도 기악적 배열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PQ가 2인 체계로 재편성하며 선보인 가장 최근의 성과는 Terrain (2021), Monument (2021), Next Stop (2022) 등으로 이어진 연작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세션을 테마와 구성의 차이를 반영해 구분하여, 각기 다른 음악적 성격을 담은 앨범과 EP로 선보이게 되는데, 전체적으로는 연주 악기의 특성을 우위에 두면서도 일렉트로닉의 공간적 배열과 진행 형식을 활용한 장르 복합적 성격을 부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Monument 앨범의 경우 단편적인 모티브를 통해 집합적 사운드의 다양한 표출 가능성을 선보였다면, 앞서 발표한 Terrain에서는 곡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구조적 배열을 통해 긴 호흡의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번 앨범은 또 다른 부제이기도 한 Live in Studio One: An Abbey Road 90th Session에서도 알 수 있듯이, 90주년을 맞이해 AR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기념 세션의 일부로, PQ와의 인연은 Isla (2009) 녹음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 말에 진행한 이번 녹음은 기존 Terrain 세션에 현악 4중주의 연주를 더한 확장판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오리지널 연주가 지닌 독특한 정서적 몽환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연주에 단순히 현악의 레이어를 추가하는 방식이 아닌, 진행 속에서 새로운 라인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재구성함으로써, 기존 원곡의 오리지널리티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스트링을 활용한 음악적 확장을 동시에 모색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기능적 재배열의 방식이 아닌, 음악적인 플로우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도록 고려한 일련의 정교한 편곡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덕분에 연주가 균일하게 완성하고 있는 부피감이나 밀도감에서는 원곡의 인상을 현재의 세션에서도 지속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라이브의 특성을 반영해 원곡과의 차별점을 분명하게 부각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에서는 오리지널 세션이 지닌 고유한 정서적 텍스쳐나 몽환적 집약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라이브 세션의 특성상, 던컨은 드럼과 샘플링을 담당하고, 잭은 색소폰과 원하는 사운드로 튜닝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대신, 신서사이저와 베이스에 Taz Modi가 참여하고 있으며, 행 드럼 및 피아노에는 기존 PQ의 멤버였던 Keir Vine이 함께하고 있어, 온전한 쿼텟 형식으로 녹음이 이루어졌다. 루프와 시퀀싱을 연상하게 하는 미니멀한 페턴의 반복적인 리듬과 라인은 연주 악기의 재현을 통해 완성하고 있어 극적인 순간에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피치와 벨로시티의 변화는 균일한 밀도로 이루어지는 음악적 플로우에 미묘함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신서사이저 또한 기악적인 방식으로 활용되어 곡의 공간적 디테일을 완성하는 사운드스케이프의 연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트링을 포함한 연주 악기와의 긴밀한 연관을 강조하며 정서적 깊이를 재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번 세션 자체가 어쿠스틱의 우위를 전제로 진행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연주 악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녹음임에도 전체적인 느낌에서는 전자 음향과 효과를 활용한 원곡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스트링의 집합적 사운드는 간혹 날카로운 드론을 연상하게 하는가 하면, 반복적인 라인들의 중첩으로 완성한 공간은 일렉트로닉의 장치적 효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숨 막히기까지 하다.
원곡이 지닌 고유한 우울의 깊이와 불안한 안정감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재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여 무척 흥미롭다. 라이브와 어쿠스틱의 특징을 더해 기존 원곡의 깊이를 확장하는 한편, PQ 특유의 음악적 응집력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적 표현의 확대까지 시사하는 듯하다.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성을 PQ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듯한 순간은 기존 녹음과는 다른 황홀한 매력을 제공하기도 하여, 이후 이들의 작업에 이러한 모습들이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번 라이브 세션 전체 영상은 Gondwana의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21026
related with Portico Quartet
- Portico Quartet - Art in the Age of Automation (Gondwana, 2017)
- Portico Quartet - Untitled (AITAOA #2) (Gondwana, 2018)
- Portico Quartet - Terrain (Gondwana, 2021)
- Portico Quartet - Monument (Gondwana,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