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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oger Eno - The Skies, they shift like chords... (Deutsche Grammophon, 2023)

 

영국 작곡가 Roger Eno의 앨범.

 

최근 로저가 Deutsche Grammophon에서 선보인 일련의 작업은 전자 음악과 현대 클래식의 유연한 관계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개방하는 듯하다. 서로 다른 음악적 접근은 물론 그 언어와 표현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두 장르 사이의 간극이, 실제로는 단순한 공백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노 형제를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이 실천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그 성과 또한 하나의 경향적인 흐름이 아닌, 지속성을 지닌 음악적 비전을 갖추고 있으며, 양쪽 장르를 포함해 주변의 다양한 양식에도 강한 힘과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내력을 지니기도 한다. 기악적 연주와 장치적 모듈레이션이 어떻게 하나의 표현으로 통합을 이룰 수 있는가를 증명하기도 했으며, 이는 결국 작곡을 통한 언어적 합의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DG에서 발매한 로저의 작업들은 이에 대한 인상적인 사례로 충분히 언급될 만하다.

 

이전 The Turning Year (2022)와 그 부속을 다룬 최근의 The Turning Year: Rarities (2023)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 또한 그 연장과 화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충분하다. Scoring Berlin과 Christian Badzura와의 음악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Alexander Glücksmann와 Jon Goddard를 포함해 Vocalconsort Berlin 등과 새로운 음악적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자신의 딸 Cecily Eno도 일부 연주를 포함 작곡에서도 함께하고 있다. 자신의 작곡과 음악이 피아노와 현악은 물론, 기타, 클라리넷, 비브라폰, 오르간 등의 여러 기악적 표현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극히 제한적인 공간에서 한정적인 방식으로 일렉트로닉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 또한 기악적 흐름과의 관계에 적응한 톤과 효과에 의지하며, 앨범 전체의 음악적 지향과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앨범은 다양한 로저의 작곡이 다양한 기악적 표현과 이루는 관계를 다루고 있어, 엄밀한 구조적 양식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각의 사운드가 서로 맺고 있는 연관은 의외로 여유롭고, 개별 기악적 흐름이 자신의 호흡에 따라 유영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유연한 연관성을 반영하는 듯한 유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변화는 의지의 개입보다 우선하는, 흐름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함축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곡가는 이에 대해 ‘스냅숏’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음악 그 자체의 묘사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관찰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노트들이 독특한 코드를 이루는 듯한, 마치 음악적 염력과도 같은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음과 화음의 변화는 우리의 일상과 주변 세상을 소리로 그려내는 듯하여, 그 묘사의 성격은 작가의 의식을 통해 반영된 그림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번 작업은 이전에 비해 확장된 기악적 표현을 활용하고 있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비롯해 목가적 정경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어, 정서적으로는 매우 친밀한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음악 그 자체가 스스로 호흡하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듣는 이는 자신의 의식과 영감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을 개방한다는 점에서, 이번 앨범은 큰 매력을 지닌다. 위대한 작곡가는 위대한 철학가이기도 하다.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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